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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Jul 12. 2020

삼십육계 줄행랑

내 하루의 편린들 16 /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by 선연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보지 않은 채 부모님 우산 아래에 있다 직장에 들어갔다. 본 적 없는 모진 풍파에 이리저리 비틀거리니 몇 년이 흘러있었다. 정신을 차려 내 안에 울리는 경고 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부모님에게 전하자 고졸인 나는 얼른 다른 길을 알아봐야 했다. 누가 내게 얼른 알아보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했기에 속히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우연히 한 시험을 알게 되고 부모님에게 공부계획을 말씀드렸다. 쉽지 않은 시험이지만, 합격만 하면 인생역전이었다. 나를 찾아온 로또 같은 기회로 느껴졌다. 어렵겠지만 이겨내리라는 다짐을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어려울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하셨고 반대로 어머니는 해보라며 격려해주셨다.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는 인터넷 강의를 굳은 마음으로 결제했다. ‘나는 이제 이 길이다’ 다짐하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문과인 나는 시험의 기본 개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꾸만 동영상 정지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한참을 혼자 생각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과인 남동생과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도 과거에 이과생이었을 뿐 지금은 전혀 이과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웹사이트 질문코너에 익명으로 질문해 강사도 설명하지 않는 기본개념에 대해 이름 모를 착한 사람들로부터 도움받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절호의 시험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려움이 휩쓸고 지나가자 자괴감이 찾아오더니 어느 틈에 낮아진 자존감은 바닥을 뒹굴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거실로 부르셨다. “시험 준비를 그만두는 게 어떠냐, 아니라고 생각되면 빠르게 포기하는 게 낫다” 말씀을 듣자마자 불쑥 반감이 들었다. “아니에요. 저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엄지발톱 앞 한없이 작아진 내가 고개 숙인 채 앉아있을 뿐이었다. 시험 범위 중 사분의 일 즈음을 공부하던 중이었지만 이미 이 정도도 버거운 게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중국 고대 병법 중 36번째 계책으로 ‘달아나는 것이 상책’인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서 ‘달아남’은 비겁한 도망이 아닌 당장의 싸움에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내일을 기약하는 후퇴라고 한다. 당시엔 선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모님에게 부끄럽고 죄송했는데 돌이켜보니 적당한 시기에 포기를 결정해 오히려 지혜로웠다. 객관적인 상황 파악, 인정하는 용기, 깔끔한 포기를 통해 한층 성장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Good Game(GG)" 이라며 웃으면서 얘기한다. 아직 씁쓸한 맛이 입에 맴돌긴 하지만 하나의 동아줄을 포기하면 또 다른 동아줄이 내려온다는 걸 알게 됐다. 포기하는 것은 두렵고 포기를 인정하는 것은 더 두렵다. 하지만, “포기하기 잘했다” 하는 게임도 있다. 시야가 좁혀진 상태로 달리는 경주마 같은 결정은 옳은 판단이 아닐 확률이 높고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냥 조급하게 선택했다. 이제는 성급하게 굴지 않는다. 나만의 속도로 차근히 기준을 만들어 현명한 결정을 내릴 그 날을 위해 느긋하게 만족하는 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이렇게 단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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