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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Oct 03. 2020

마냥 즐거운 추석은 없나요?

내 하루의 편린들 17 / 퇴사 후 첫 추석맞이

ⓒ 선연



며칠 후 추석이다. 먼저 말을 꺼내려했는데 맛난 저녁밥에 눈이 멀어 하려던 말을 잊고 결국 아버지 입에서 말이 나왔다.


“딸, 다른 가족들에게 언제 말할 건데, 계속 가족들 피해 다닐 꺼가”

아! 음.. 그게 아닌데...

얼마 전 친가 점심자리에 참석치 않아 그렇게 생각하시나 보다.



휴,



짐짓 대답을 밝게 꺼냈다.

"아, 안 그래도 그 얘기를 논의하려 했는데 깜빡했네. 헤헤 "

갑자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먼저 말할 필욘 없고, 나중에 00이 다른 일 생기면 그때 말해도 되지. 왈가왈부하는 거 듣기 싫다"

그래 맞다 아버지에게 질문하거나 조언하려는 가족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 총알은 모두 어머니로 향하겠지.



아버지 표정이 안 좋아지셨다.

아버지는 대뜸 남동생에게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나도 덧붙여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고 동조의 눈길을 담아 물었다.



동생은 흐음.. 하며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고 답했다.

영리한 녀석 같으니,

동생은 어느새 슬기로운 성인으로 자라 있었다.



이제야 나는 말했다.

며칠 전 가족행사는 사정이 있어 불참하였고 이번 추석에 양가 친지들을 만날 것이며 피하는 게 전혀 아니라 했다.



그래도 마뜩잖으신 아버지 표정

어머니가 한술 더 강하게 뜨셨다.

"입에 오르내리기만 할 뿐, 말해봤자 좋은 게 없다"



그렇다. 누구네 자식의 퇴사란 놀랍도록 쉬운 사냥감이다. 뜯기 좋은,

공통 대화 주제가 마땅찮은데 퇴사 이야기라면 얼씨구절씨구 쿵덕쿵덕 자리에 오지 못한 분들에게까지 삽시간에 퍼지겠지. 안이든 밖이든, 어디든 인간사 똑같다.



결국 나는 일했던 마지막 부서에서 아직도 근무 중이다.



조금 서글픈 추석맞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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