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나를 잃는 과정
‘사회적 나’와 ‘본래 나’를 구별하는 법을 모른 채 출근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적응 잘하며 일 잘하는 꿋꿋한 사람인 척 행동했고 ‘본래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직 감당할 수 없으면서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는 식이 돼버렸고 점점 ‘나’는 사라졌다. 부모님은 내가 달라졌다 말씀하셨다. 회사에서의 나를 집까지 가져오며 점점 부모님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혼란으로 빠지고 있는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어느 쪽도 진짜가 아닌 기분이었다.
조직에 대한 불평불만에 힘을 쏟았다. 근무 중 한숨소리가 커지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크게 내쉬는 행동을 반복했다. 의도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고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동료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까 죄송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버거운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철없는 소리지만, 어쩔 땐 묻고 싶었다.
"엄마, 인생은 살기 힘든 거라고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묻지 못했다. 혼자 눈물로 삼켰다. 왕왕 울고 흐느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는 회사든 집이든 꿋꿋하게 생활해야 했다. 울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가장 많이 들었던 충고다. 아무래도 다들 겪는 신입의 힘듦, 과도기적 고비, 슬럼프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참아봐라’
결과적으로 저 말은 내게 독이었다. 점점 더 숨 막혔다.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애써 내면의 소리를 꾹꾹 눌러야 했다. 들려오는 생각과 고통의 아우성을 계속 무시했다. 그러나 눌러 담으면 반발력에 의해 더 크게 터진다.
참고 견디면 지나간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유용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힘들어하며 고민을 내보이는 건 내 말을 들어주는 그 사람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나는 내게 조언해주신 선배, 동료, 친구, 부모님의 말씀이 맞다 믿었고 ‘나는 왜 이렇게 못 버티고 자꾸 도망가려 하지, 무너지려 하지’ 라며 스스로 책망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고 견뎌라”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된다. 위험한 말을 너무 쉽게 조언의 말로 사용하고 있진 않은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