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0일, 연희동에 위치한 책바(chaegbar)에 방문했다. 저녁 8시경 도착한 그곳엔 벌써 사람들이 꽤 자리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들어올 위치는 아닌데 그럼 모두 나처럼 여길 찾아왔다는 거구나? 애매한 화요일 저녁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건 오게끔 만드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
얼떨결에 앉은자리엔 조성진이 있었다. 물론 액자 속에서. 풉,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어제 이 시간에 그의 피아노 공연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만났네! 딱 24시간 만에 말이야!
메뉴판 제일 처음에 적혀있는 압생트가 들어가는 시그니쳐 음료를 시켰다. 좋아하는 자몽이 들어가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술의 소개글에 적힌 마지막 문장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당신을 위해 자몽을 최대한 달처럼 넣어드리겠습니다'
주인장은 칵테일의 첫 입이 중요하다 말했다. 초짜는 시키는 대로 했다. 첫 모금, 그리고 두 모금. 아 이게 압생트구나- 하는 순간이 중간에 쑥 지나갔다. 적절한 균형이었다. 과자 안주를 입에 하나 넣었다. 아이것도 취향저격이네.짭조름한 과자속 달달함이 들었다.
술은 처음엔 짜릿하다. 하지만 점점 노곤해진다. 어딘가에 누군가에 기대고 싶어 진다. 나중엔 눈이 뜨거워지다 못해 두통이 온다. 아, 음.. 알코올 도수 6%였던 것 같은데...
누구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빠르게 쿵덕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과자를 조용히 깨먹었다. 여전히 곁에는 성진이 있었다. 5년 전 사진이지만, 어제 본 그가 선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술 때문인지 이 곳이 현실세계와는 단절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정성으로 가게를 운영한 주인과 그 가게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손님들, 시간이 함께 더해진 세상, 고유한 느낌.
생각보다 남녀 성비가 비등했다. 음악 선곡도 좋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점은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혼자 온 손님이 다수라 가능했다. 조용한 가운데 음악이 들어차고 존재함만이 어우러지는 공간, 그 공간이 좋아서 가기 싫었다. 하지만, 돌아가야만 한다. 주인장은 나가는 문을 열어주셨다. 그리곤 말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