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양>을 본 직후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악몽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내 안에 기둥 하나가 무너져 자꾸만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런데 눈물만은 나지 않았다. 외려 어떻게 눈물을 흘리더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설날,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난 늦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만 배워서"
감성적인 나에 비해 동생은 이성적인 편이다. 저 짧은 문장이 아픔을 담아 무겁다. 우린 힘듦을 보이면 약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삑 하면 울던 나를 아버지는 그리도 싫어하셨다.
어머니에게 말했다. 동생은 나보다 감정이 더 드러나지 않으니 챙겨봐 주라고, 괜찮아 보일지라도 속은 안 괜찮을 수 있으니 한 번 더 물어봐 주라고.
<애프터 양>은 이별에 관한 영화라 말하고 싶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제 그만 '양'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의 슬픔이 몸에 스며든다. 이것이 비단 그들의 슬픔만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무의식은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양'을 투영했다.
일어나서도 멍했다. 감정이 무(無)가 된 것 같은 아침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런 문자가 왔어. 집으로 케이크 보낸 거니?"
케이크 배송과 관련된 문자를 받으셨다는 어머니의 연락이었다. 맞다. 일주일 전 부모님 결혼기념일 축하케이크를 주문했었다. 그 어떤 기념일도 챙기시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정신을 차렸다. 살아 계실 때 잘해드리기로 한 다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래 일주일 전의 나, 아주 잘했어. 스스로에게 고마웠다. 어머니가 아직 곁에 계셔 행복했다.
오늘에 감사할 수 있어 행운이야. 영화 속 '양'이 감긴 두 눈을 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