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랑, 사람
ENFJ남자 - INFJ여자
이 연애는 왠지 특별하다. 인생 처음, 나로부터 시작한 연애이기 때문이다. 그가 타야 할 지하철의 출입문이 열렸을 때 그의 오른팔을 내가 붙들었다. 나도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종종 그 순간을 그와 함께 되짚는다. 그러면 그는 내게 속삭인다.
"그때 내 팔을 먼저 잡아줘서 고마워."
우린 비슷한 결을 가졌다. MBTI로 말하자면 ENFJ와 INFJ. 어느 주말 카페에서 그가 먼저 내 MBTI를 물었다. 의외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우리 둘의 MBTI는 다를 것 같다며 은근히 답을 회피했다. 그러자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 MBTI는 비슷할 것 같아. 그래서 네 MBTI를 맞출 수 있을 것 같고... 음... 난 ENFJ야."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어떻게 안 거지? 왜 난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했지? 이 MBTI가 흔한 거였던 건가? 질문으로 혼란스러워진 내 머릿속이 보인다는 듯 그는 웃었다.
"그치? 어때? 니 MBTI는 뭔데? 우리 거의 똑같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가 닮았다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사고방식이 비슷해 조금만 말해도 "아~ 무슨 말하는지 알겠다." 이렇게 대화가 진행된다. 특히 어떤 감정을 지금 느끼고 있는지 서로가 잘 알아차린다. 그 감정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는 식으로 말을 되받는다. 한 번은 그가 감성에 빠져 있을 때 과거의 내 모습을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 소름 돋았을 때가 있었다.
늦은 저녁 청계천에 앉아 포장해 온 음식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그는 과거 자신의 삶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 대해 "다시 보진 못하겠지..."라며 한껏 센치해져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입맛까지 잃어버린 그를 보며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불현듯 '아, 옛날에 나의 연인들도 내가 이렇게 느껴졌겠구나!' 하며 옛 연인들의 입장이 이제금 이해되는 것이다.
그에게 말했다.
"돌이켜보니 나에겐 이런 센티멘탈한 감정이 그다지 도움 되지 않더라고... 혹시 지금 네 감정이 현재 너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니? 너와 함께 있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을까? 지금 이 시간이... 선선한 오늘의 저녁밤이 아깝진 않니?"
그는 과거의 나보다 똑똑했다. 눈빛이 바뀌더니 고맙다 말하며 내 오른쪽 손등에 입을 맞췄다.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청계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연인이란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흔적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어느 깊은 곳에 새겨져 문득 느껴질 뿐이다. 사람, 사랑. 단 하나의 자음만 다른 두 단어에 다시 빠져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