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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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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May 05. 2023

내일 결혼합니다. 전남친이

시간이 연어처럼 거꾸로 거슬러 오른다면

나와 결혼박람회도 간 그인데,

나 아니면 누구랑 결혼할 수 있을까 반문하던 그인데...

역시 시간은 약이다.


사실 그가 결혼하지 않을 이유 없다.

안정적인 직업에 집도 차도 있다.


결혼 충분조건을 갖춘 그에겐 '이제야'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도 모르겠다.

그와 달리 난 '오히려' 과거보다 더 벗어나고 멀어졌지만.






최근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 개정판을 추천받아 읽었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지만, 떨어져 있어도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같이 느끼는, 소위 신기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영험하다고 부르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나는 진짜일까 늘 궁금했는데 작가의 가족이 겪은 경험담을 서술해 놓으니 과연 신기했다.




나 또한 촉을 믿는 편이다. 불현듯 전 남자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이렇게나 구체적인 느낌이 2번 왔다. 두 번째 느낌이 왔을 때 그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더니 웬걸 멀리서 봐도 웨딩 스튜디오 촬영 사진이다. 클릭하니 프로필 메시지까지 보인다. 0월 0일 00시 00홀. 아. 그가 결혼을 하구나. 아. 그것도 이번주에.




불 꺼진 침대 위에서 동 틀 무렵까지 예식장 후기를 찾아보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이 예식장에 우리가 서있다면, 이 웨딩홀에서 내가 결혼한다면, 여기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경로를 상상해 본다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몸을 배배 꼬아가며 그와의 결혼식을 현실적으로 처음 그려봤던 밤이었다.






그 나이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순수했던 사랑은 다른 사랑들과는 결이 다른 고유한 존재이다. 예상 다들 가슴속 한편에 꽁꽁 묶어 봉인해 두지 않았을까.




헤어짐을 선택한 내 선택이자 우리의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다. 다만 인생에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름끼쳤. 만약 나만 결혼에 응했다면 지금 그와 난 이미 부부였을 테니까.




이로써 <이별일기>에 적는 마지막 글이 되겠다. 최종.ppt, 최최종.ppt처럼 진짜 진짜 마지막이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연어처럼 거꾸로 거슬러 오를 순 없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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