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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Oct 20. 2018

백수의 직업병

취업이 목표가 되면 사람이 괴물이 되는 것 같다.

내 인생 자체가 취업을 위해 굴러간다.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드로잉을 하다가도, 이걸 나중에 포트폴리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자소서에 어떻게 녹여내지? 그럼 지금보다 스케일을 좀 키워서 프로젝트로 만들어볼까.

그냥 돈 벌어 여행가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다가도, 좀 더 특이한 알바, 좀 더 면접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알바를 찾게 되고.

심지어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도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무언가를 해결해내면 나중에 면접 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에 푹 빠지지 못하고 자꾸만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관계를 도식적으로 정리하려고 하고, 좋아하는 민요를 들으며 아무 생각없이 절간의 냄새를 맡으려다가도 이 느낌을 기억해놨다가 작문에 꼭 써먹어야지.

감정도, 생각도, 순간의 느낌도 냄새도 노래도 아무것도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캘린더에는 2월까지의 계획이 빼곡히 적혀있지만 전부 취업에 닿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더 이상 내가 진짜로 뭘 원하는지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허덕이는 느낌은 불안하고, 그래서 더 일을 벌리게 되고, 도구로 시작한 일이니까 집중이 안되고, 그러면 더 허덕이게 되는 악순환. 

그냥 

감정이 

닿아서 

울음이 나는


게 

따뜻하다고 

느껴서 시작했을


뿐인데. 

그래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울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울어줬으면 해서.

따뜻해서.


그 길이 너무 멀다.


쌓아올린 무게들을 내려놓고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고 원하는 걸 하다보면 어느 새 내 꿈에 닿아있지 않을까?'하는 나이브한 생각도 잠시 해보지만 선뜻 나설수가 없다. 덜컥 졸업해버린 백수다. 휴대폰 캘린더 앱의 숫자가 계속 바뀌고 있다. 분명 얼마 전에 '1'이었는데 오늘은 '20'일이다. 그 숫자는 다시 '1'이 되었다가 또 '20'이 되었다가 또 '1'이되고 '20'이 되면 2019년이 되고 나는 1살 더 먹겠지.

나이가 어쩌구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만 정작 내 일이 되면 누구보다 나이를 신경쓰게 된다.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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