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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Sep 02. 2019

한 끼 주면, 한 끼 갚나요?

마냥 따뜻하게만 볼 수 없는 나그네의 방문

*2017년 방송문화진흥회&MBC 주최 '제20회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에서 수상한 글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 中



해방 이후 암흑시대를 살았던 서정시인 박목월은 자신의 시에서 따뜻한 세상을 꿈꿨다. 그의 선조들은 나그네를 집에 들여 정성껏 밥 한 끼 내어주는 넉넉함을 당연한 예의로 여겼다. 음식이 잘 되면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저녁  밥상 앞에는 늘 가족 손님 할 것 없이 소중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예로부터 한국인들에게 음식문화는 삶의 주요한  부분이자  정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이제는 모두 옛날 얘기가 되었다. ‘혼밥’이 유행하고 회식은 기피 대상이다. 소중한 이와의 식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소중한 이를 품을 나의 여유는 확실히 줄었다.  이런  풍조  속에서  강호동과  이경규가 현대판 나그네로 타인의 저녁 밥상 앞에서 ‘식구( 食 口 )’가 되려 한다. 바로 JTBC의 <한 끼 줍쇼>이다.



우리는 식큐멘터리입니다

두 MC는 회마다 달리 초대되는 게스트와 함께 그 날 선정된 동네를 돌아다니며 ‘식구’가 되어 줄 집을 물색한다. 미리 정한 집과 길은 없다. 출연진의   발길 닿는 대로 카메라가 뒤쫓는다. 자연스레 예능 <한 끼 줍쇼>에 실제의 시간과 공간이 누적되며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가미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흘러나오는 차분한 성우 내레이션은 휴먼다큐의 느낌을 더욱 극대화한다. 물론 장르 간 중첩이 아예 새로운 것은 아니다. SBS <정글의 법칙>이나 MBC <아빠 어디 가?>는 예능에 다큐를 접목했고, 이를 통해 출연진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며  흥행했다.  <한 끼 줍쇼>와 동일한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았던 SBS<짝>은  시사교양에  예능적  요소를 더한 시도로 호평을 받았다.


예능과 다큐의 결합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려는 기존 예능의 피로감을 보완해준다. 예능의 기본은 재미이지만, 작위적인 재미는 시청자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억지웃음일 뿐이다. 일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대본이 유출되어 ‘짜고 치는 연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사건을 통해 자연스러움에 대한 시청자의 갈증을 알 수 있다. 하여 <한 끼 줍쇼>는  희극인이  제공하는  훈련된 재미와 일반인이 선사하는 우연성의 감동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예능 다큐를  선택했다. 짜인 각본이 없을 때 발생하는 돌발 상황은 보는 사람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그 덕에 시청자들은 출연진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예능 대부 이경규가 최대한 공손하게 집 문을  두드렸을  때  ‘그런데요?’,  ‘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와 같은 당황스러운 대답이 날아오는 장면에서 시청자들도 함께 민망함을 느낀다. 또 게스트 김희철이 대답 없는 인터폰을 보며 아쉬워하기는커녕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사람 없나 봐!’를 외치는 모습도 이해할 수 있다. 베테랑 연예인들의 긴장과 두려움이 날 것  그대로  보이며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감정 이입을 한다. <한 끼 줍쇼>가 자신의 정체성을, ‘식구가 되는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 즉 식( 食 ) 큐멘터리로 강조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즉흥성과 생생함이 시청자에게 공감과 따뜻함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의 가격

프로그램의 핵심은 가족들과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재미는 그 날의 동네를 구경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다 보니 동네 노출은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명물거리를 소개하거나,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그  동네를 알아가는 데에 방송의 절반 정도를 할애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수하게 하나의 동네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2017년 10월 17일까지 총 51화의 방송 중 36개 화를 차지한 지역은 서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같은 서울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촌과 서민동네가 구분된다. 방송 초반 동네를 소개하는 VCR의 톤부터 느낌이 다르다. 부촌으로 분류되는 동네를 소개할 때는 빠른 화면 구성과 화려한 음악을 강조했다. 8화 청담동에서는 백인 대중들이 전면에 나섰던 스윙풍 음악을, 27화 한남동 편에서는 ‘Break Anotha’라는 화려하고 신나는 배경음악을 사용했다. 반면 14화 봉천동을 소개할 때는 마이너 음조의 비교적 무거운 배경음악을, 31화 노량진에서는 서민의 애환이 담긴 ‘서울의 달’을 배경음악으로 선정했다. 일견 동네의 이미지에 걸맞은 음악을 선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존의 편견을 답습한 ‘이미지 재생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편견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부유한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배경이 한 아이의 인상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부유한 동네에서 찍은 아이의 사진을 본 집단은 아이가 ‘자기 생각을 잘 말하고’ ‘활발하고 아이들을 리드’하며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반면 가난한 동네에서 찍은 아이의 사진을 본 집단은 ‘지식이 많이 딸리’고 ‘발달이 미숙’하며 ‘많이 배우지 못해서 말을 잘 못하는’ 아이 일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렇듯 공간적 이미지는 짧은 시간에 사람에게 편견을 심어준다. 나아가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까지 달라 보이게 한다. 이제는 <한 끼 줍쇼>의 고정 코너가 된 이경규의 부동산 방문은 이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동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함이지만, ‘평당 3000만 원’, ‘이 동네 주민들은 문 안 열어줄걸요’ 등과 같은 부동산 주인의 대답은 동네를 바라보는 색안경을 씌워준다. 이는 동네를 소개하기보다는 오히려 동네 이미지를 형성하거나 더욱  견고히  하는  과정이다.  물론 제공되는 정보를 통해 객관적인 도움을 얻는 시청자도 분명  존재하고,  각  동네의 명물과 특징 등 차이점을 소개하는 것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비교적 서민적인 동네 사람이 되었을 때, 그 평판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것은 누구일까.



우리 이제 식구잖아요?

동네를 둘러보고 벨 누를 집을 찜하고 나면, 그다음은 본격적으로 식구가 될 차례이다. 망설이던 집주인이 식사를 허락해 줄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면  신이 난 강호동이 ‘오늘 호동이와 식구가 되어주실 거예요?’라고 애타게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식구( 食 口 )라는 말을 가만히 살펴보자. 단순히 밥을 나눠먹는 사이를 넘어 곧 함께 사는 가족 혹은 유사가족을 연상시킨다.  즉, 식구가 된 출연진은 그 날 하루 저녁만큼은 한 집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지난 31화에 출연진은 노량진 고시촌을 찾았다. 어느 집이든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며 밥 한 끼 대접해달라는 것은  실례이나,  고시촌은 특히  그렇다. 동네 전체가 도서관인 듯, 곳곳에 조용히 해달라는 표시가 붙어있다. 그러나  밥 동무를 찾아 고시텔 건물을 돌아다니는 그들의 노크 소리에 무겁던 적막이 깨졌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문 앞에서 출연진들의 숨죽인 웃음소리는 유난히 소란스럽게 들렸다. 겨우 계단을 오르던 학생 한 명을 섭외한 이경규와 김풍은 그의 방 구경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시생을 상대로 '시급이 얼마냐' '시험에 몇 번 떨어졌냐'하는 민감한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학생들은 '상처가 되는 질문'이라면서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지만, 마치 명절날 집안 어른들이 취업이나 결혼에 대해 무심코 묻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이는 프로그램이 생각한 '식구' 혹은 가족의 의미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비단 고시촌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일일 가족이 된 출연진은 밥 먹기 전 둘러앉아 집주인과 그 가족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단골로 나오는 질문은 부부의 연애시절 이야기나 아버지의 직업, 아이들의 꿈이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며 정을 나누기 위함이지만, 누군가의 사적인 이야기를 방송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다. 굳이 방송에 공개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꺼내놓으며 방송 분량을  채워주고  나면  출연진이  돌아간 후의 공허함을 상상할 수 있다.

 

평범함이라는 틀

‘평범한 가정, 국민들의 저녁 속으로 들어가 저녁 한 끼 나누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엿보고자 한다’. <한 끼  줍쇼>의 소개 글 일부이다.  평범하다 는 건 무엇일까. 지금까지 방문했던 100곳 가까이의 가정 중 셰어하우스(48화), 신 혼 부부의 집(30화), 휴학생(18화), 대학생(14화) 등 몇 군데를 제외하면 출연진은 주로 인자한 부모님과 예의 바른 자식들, 간혹 토끼 같은 손주들도 함께 사는 집을 방문했다. 가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전형적인 그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평범한 것일까.


2010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비율은  전체의 23.9%,  1세대 가구는   전체의  15.4%를  차지했다. <한 끼   줍쇼>가  방영되던 2016-17년 무렵에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또 서울, 경기, 경남 지역 등을 제외하고 2015년 시도별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은 1인 가구였다. 심지어 조부모 및 자녀와 함께 사는 3세대 이상 가구는 2015년 전체 가구의 5.4%에 불과했다. <한 끼 줍쇼>는 서  울, 그중에서도 문을 열어 줄 확률이 높은 주택가를 공략했고, 결과적으로 비슷한 가족의 모습이 방송됐다. 너무 좁은 범위의 집만을 찾으며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이라고 칭했던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평범한 저녁을 엿보기 위해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그러나 이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구들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서도 평범함이 있다. 30화 마장동에서 강호동과 윤아팀은 한 신혼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자연스럽게  여자와  윤아는  저녁을 준비하고 남자와 강호동은 방에 앉아 남자의 연구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카메라는 허둥지둥 레시피를 검색하는 여자를 귀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아직  요리가 서툰 새댁’이라는 자막을 붙여주었다.


이처럼 아내가 임신했거나(48화), 남자 둘이 룸메이트 거나(41화), 남편이 취사병이었던 경우(13화)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저녁 준비는 여자 담당이다.  대신 남자는 거실에 앉아 사람들을 맞아주고 집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간혹  남자가 음식을 준비하는 때에는 ‘원래 아버님이 음식 준비를 도와주세요?’라고 질문하거나 ‘가정적인 남자’라며 칭찬해준다. 중년 남성인 두 MC는 ‘어머니, 도와드릴까요?’하며 부엌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나 풍부한 요리 재료와  어머니의 요리 솜씨에 감탄하고는 이내 거실에 앉아 나머지 식구들과 토크를  시작한다.


그 날 하루만큼은 가족이 두 명 더 늘지만 여전히 음식을 준비하는 일과 부족한 반찬으로 부끄러워하는 일은 한 여자의 몫이다. 이러한 가족의 역할은 이미 ‘평범한’ 것이므로 다소 불편한 진실이더라도 자연스럽게 방송하면 되는 것일까. 여자는 주방에, 남자는 거실에 있는 것을 따뜻한 가정의 모습으로 포장하는 것은 자칫 그것이 평범하므로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우려마저 있다.



편의점의 사회학

<한 끼 줍쇼>의 출연진들이 밥 동무 얻기를 실패했을 경우 차선책으로 향 하는 곳이 편의점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편의점이 등장하기 전 동네마다 있던 구멍가게는 물 한잔 얻어먹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들러 안부와 소식을 공유하기도 했던, 한마디로 정( 情 )이 있는 공간이었다. 반면 편의점은 효율과 익명, 통제를 핵심적 가치로 삼는 현대 사회를 꼭 닮은 공간이다. 재미있는 것은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앞서 언급한 <한 끼 줍쇼>의 비판점들을 통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능숙하게 ‘인간’이 되어 있구나 하고 안도한다. 이 안도를 편의점이라는 장소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가 매일 규칙적인 편의점에서 점원으로서 하는 말이다. 편의점에는 하나의 매뉴얼이 존재한다. 모든 구성원이 그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평범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암묵적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한 집안에는 남편과 아내, 자식이 오순도순 사는 것이 ‘보통’이다. 아빠는 일을 하고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고, 학생은 꿈을 꾸며 공부하는 단란한 가정, 그 평범함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면 안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누군가의 질문이 들어온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또한 통념과 달리 사실 편의점은 익명의 공간이 아니다. 편의점 계산기는 상품 바코드를 찍은 뒤 이른바 ‘객층키’를 눌러야 계산이 완료된다. 객층키를 누르면 손님의 연령과 성별 등이 입력되기 때문에 그의 취향, 동선, 고향, 가족관계, 심지어는 성생활까지 통계 낼 수 있다. 편의점은 개인의 사적인 정보를 모두 흡수하는 것은 물론 그의 정체성까지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한다. <한 끼 줍쇼>가 내가 사는 동네의 이미지를 형성해주고, 일반인 출연자에게 던지는 사적인 질문에 대한 대 답으로 나를 하나의 속성으로 분류해 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물론 <한 끼 줍쇼>가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은 아니나 은근하게 사회 내 특정 이미지와 위치를 형성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사생활 개방의 측면에서 봤을 때 편의점이 통유리로 뒤덮여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숨겨진 비밀 극장

한남동에서 첫 시도 만에 한 끼 줄 집을 찾은 강호동과 민경훈은 집 안까지 들어갔지만 이내 다시 나와야 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촬영을 불편해한다면 미련 없이 나와야 하는 ‘한 끼 규칙’에 의거한 것이다. 그만큼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사적 영역과 가정사를 노출하는 일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난 35화 내곡동 방문 후 시청자 게시판은 폭주했다. 밥 동무를 거절하는 주민들의 인심이 과하게 야박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을 무안하게 할 만큼 문전박대하는 것은 보기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큐멘터리 컨셉 특성상 시청자는 방송의 화자인 연예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쉽다. 그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집주인이 촬영을 거부하면 ‘좀 받아주지’라는 반감이 생길 수 있다. 촬영을 거부하는 것은 고생한  출연진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이는 사생활 노출을 큰일이 아니라는 듯 여기도록 유도할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사생활 감시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닉 콜드리는 오늘날 미디어가 신자유주의의  비밀 극장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에 걸맞은 사고를 미디어에 녹여내 은밀하게 사람들의 생각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한 끼 줍쇼>와 같이 일반인의 사생활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비밀 극장은 더욱 견고하게 작동한다. 시청자가 일반인의 비치는 모습과 스스로의 삶을 비교하기 쉽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던 동네에 대한 이미지 형성, 가족 구성원의 역할 공고화, 쉽게 사적인 질문을 던지는 행위 등을 방송에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방송은 비밀 극장으로 작동한다.


누군가는 시민 참여가 자발성에 기초한 것이므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끼 줍쇼>는 촬영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다. 그리고 출연진들은 문 앞에 서서 숟가락을 들고 금방이라도 들어갈 것처럼 서 있다. 과연 촬영에 동의한 것이 완벽하게 시민의 자발적 참여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발성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의 사적 영역 노출을 정당화하는 과정일 수 있다.  또  원치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노출된 사람들의 명예는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수많은 리얼리티 방송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일반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사생활을 이용하지만, 대부분 거기서 그친다. 개인의 고민을 엮어  문제의식은 던지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한 끼 줍쇼>보다 더 적나라하게 현실을 비춰주는 프로그램은 많았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 해결의 방법이나 의지를 보이는 프로그램은 별로 없었다. 방송이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저작권료도 지불하지 않고 개인의 사적 영역을 엿보았다면,  그것을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


<한 끼 줍쇼>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며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만 집중한 것이 아쉽다. 위에서 지적한 지점들처럼, 50회가량 시민들의 식구가 되어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했기 때문에 더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노량진에서 밥 한 끼를 함께 해준 청년에게 청춘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포기하는 과정’이라고 답했고, 화려한 청담동에서 결국 문을 열어 준 것은 반지하에 사는 청년이었으며, 구기동에서 만난 어머니는 디자인 박사과정까지 공부했지만 결혼 후 육아 때문에 직업을 포기했다고 했다. 출연진들이 엿 본 식구들은 분명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지만 프로그램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적극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물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프로그램 기획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나그네를 기꺼이 식구로 맞아준 시민들의 정을 느끼고, 우리네 삶을 엿보았다면, 이제는 은혜를 갚아야 할 때이다. 밥 한 끼 얻어먹고 길을 떠난 나그네는 이제 식구들이 더 행복해질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참조

-‘다큐같은 예능, 예능같은 다큐 ‘다큐테인먼트’가 뜬다‘-스포츠경향, 하경헌기자

-  http://static.ebs.co.kr/images/bhp/docuprime/prev/prev_popup59.htm

-통계청, “장래가구추계: 2010년~2035년”. 2012

-통계청, “장래가구추계 시도편: 2015년~2045년”, 2017

-무라타 사야카. 『 편의점 인간 』 .  살림출판사. 2016, p.40

-무라타 사야카. 『 편의점 인간 』 .  살림출판사. 2016, p.98

-전성인. 『 편의점 사회학 』 . 민음사, 2014, p.121

-이희은(2014). 관찰 혹은 자발적 감시. 한국방송학보, 28(2), 21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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