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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r 23. 2020

월간방송작가 3월호 발췌

*한국 방송작가 협회에서 발행한 월간 <2020 방송작가 2월호> 중 메모하고 싶은 일부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핵심: 

-짧은 러닝타임에 적합하도록 단박에 이해되는 서사 구조가 필요하다.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가 말하는 일관적인 메시지가 중요하다. 즉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가 뚜렷해야 한다.



*이승윤 디지털 문화 심리학자 인터뷰 일부



좀 더 짧게좀 더 다양하게


주요 지상파 방송들이 천억 원대 손실을 이야기하는 시점에, 출범도 하지 않은 콘텐츠 플랫폼이 천억 원대 광고 매출을 달성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바로 디즈니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늘 언급되는 드림웍스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회사로 키운 제프리 카첸버그가 CEO에서 물러나서 만든 회사, 바로 숏폼 디지털 콘텐츠 제작 회사인 퀴비(Quibi)의 이야기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을 선두로 디즈니, 애플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기존의 인터넷 스트리밍 기반의 콘텐츠 플랫폼과 가장 큰 차이점은 퀴비의 모든 콘텐츠가 10분이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0년 4월 론칭 예정으로 콘텐츠를 제작 중인 이 퀴비에 할리우드 A급 감독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으로 선정된 <셰이프 오브 워터>를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오리지널 <스파이더 맨> 시리즈 감독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와 같은 감독들이 한 시리즈의 길이가  2~4시간밖에 안 되는 드라마를 만드는 중이다.


퀴비는 이들 드라마를 5~10분 길이로 나누어 그들의 플랫폼을 통해 내놓을 예정이다. 콘텐츠의 소유권을 나누는 방식도 혁신적이다. 각 드라마 시리즈는 두 가지 버전으로 존재한다. 하나는, 퀴비가 10분 이내로 짧게 편집해서 내놓는 버전. 다른 버전은, 전체적인 스토리가 10분 이내로 분절되어 편집되지 않는 버전이다. 2년 동안은 퀴비가 독점적으로 해당 콘텐츠를 사용할 권리를 가지지만, 2년 후에는 창작자가 자신의 풀 콘텐츠를 자신의 방식으로 판매할 권리를 가진다. 한 마디로, 10분 이하의 버전들을 모아 중장편 콘텐츠로 재구성해서,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플랫폼에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이다. 긴 호흡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어온 기존의 창작자들을 배려하고, 동시에 새로운 시도에 많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만든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을 버는 방식도 혁신적이고 소비자 주도적인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매달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인 $4.99에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Netflix) 역시 빠르게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들어 좀 더 짧은 에피소드 드라마를 끊임없이 만들어나가고 있다. 2019년에는 각 에피소드가 12분에서 17분 사이인 드라마 시리즈들을 만들어서 내보내며 시청자들의 반응을 테스팅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이어보기 기능’을 사용하는 횟수가 2015년에 비해서 2019년에는 약 16% 상승했다. ‘이어보기’ 기능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30분 정도의 콘텐츠도 길게 생각하고, 이를 짧게 끊어보는 소비자들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말이다. 콘텐츠 한 편을 보는 호흡 자체가 점차 짧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소비자들의 변화된 시청 형태에 맞춰져서, 짧은 시간 내에 소비 가능한 스낵커블한 포맷을 가진 콘텐츠가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CES 2020에 공개된 퀴비의 오리지널 숏폼 콘텐츠 <네스트> 영상은, 여자 주인공의 집에 낯선 침입자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다. 스마트폰을 세로로 돌리면 주인공의 시각에서 여자 주인공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스마트폰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화면이 바뀐다. 주인공이 침입자의 위치를 자신의 폰으로 확인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 마디로, 콘텐츠를 제작할 때 가로 세로 모드를 따로 촬영해서, 두 가지 버전으로 시청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로 세로로 자유롭게 이동할 때마다 다른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이외에도, 스마트폰의 GPS 기술을 이용해서 시청자가 현재 영상을 즐기고 있는 위치와 시간을 파악해서 이에 맞춰진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드라큘라’가 나오는 공포 영화는 주변이 어두워진 이후에만 시청 가능하도록 한다거나, 해변 비치 주변에서 영상을 시청하는 경우에는 바다나 휴양지와 관련된 영상을 큐레이션해서 제공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외에도, 스릴러 영화에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 장면에는 진동을 준다거나, 주인공이 탈출하는 장면을 볼 때는 운동 앱을 이용해서 함께 뛰도록 하는 형태도 고려 중이다. 동시에, 스마트폰은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에 참여가 가능한 개인화된 기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참여시키는 콘텐츠 포맷을 제공하는 시도가 많아질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사랑받으려면


디지털 네이티브는 한 마디로 짧고 임팩트 있는 콘텐츠에 길들어진 세대다. 스파크 앤 호니(Sparks & Honey) 컨설팅 회사에 따르면, 미국 10대들의 평균 집중력이 8초로 2000년대 12초에서 4초나 줄어들었다. 주의력도 짧아진 대신, 멀티태스킹 하는 능력은 높아졌다. 미국 Z세대가 멀티태스킹 작업으로 선호하는 화면 스크린 숫자가 자그마치 5개다. 한 마디로, 그들은 TV를 보면서 동시에,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페이스북 피드에 올라온 친구 소식을 확인하며, 랩탑으로 구글링(Googling)을 하면서 정보를 찾고, 동시에 아이패드에 스마트 펜으로 해당 정보를 옮기는 일을 하면서 추가적으로 아이폰으로 지금 듣고 싶은 음악도 듣기를 원하는 세대란 이야기다.


이쯤되면, 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숏폼 콘텐츠를 사랑하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콘텐츠를 짧게 만들고, 짧은 집중을 통해서도 전체적인 서사가 드러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 좋을지 모른다. 동시에, TV라는 정적인 디바이스가 아니라, 손안의 스마트폰의 기능들을 최대한 반영하고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이지영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 인터뷰 일부


무엇이 BTS를 특별하게 만들고, ‘아미를 만들었으며, ‘방탄현상을 일으켰는가?


핵심은 활용 방식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메시지와 SNS인데, BTS는 이를 어떻게 활용했고, 대중은 어떻게 이에 그만큼 반응한 것일까? 우선 메시지부터 보자. 2018년 9월 UN 연설에서 선명하게 제시되고 있듯이, 그들의 메시지인 “Love Yourself”는 단순한 자기애가 아니다. 사실 메시지 자체가 새롭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BTS만의 강점이 있다. 노래 몇 곡의 가사, 앨범 하나의 콘셉트에서 메시지가 끝나지 않고, 여러 앨범이 이어지면서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끌고 가며 발전시킨다. BTS의 음악 세계는 데뷔 앨범부터 모든 앨범의 메시지가 연관되며 성장하고 발전하는 유기적 구조다. 따라서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도 이전 앨범들과 노래들의 메시지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2013년과 2014년에 BTS의 멤버들은 모두 소년이었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막 졸업한 상태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학교와 어른들을 비판하고, ‘학생’을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고 나아가 자신을 찾고자 노력하는 소년들로서 노래했다. 2015년 ‘화양연화’ 앨범들과 2016년 ‘WINGS’ 앨범 시리즈에서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면서 겪는 성장통, 혼란과 매혹 등을 노래했는데, 이때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계급이 뚜렷하고 청년을 착취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두드러진다. 이전의 메시지를 붙든 상태로, 바뀐 자신의 위치에서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2017년부터 2018년에 걸쳐서는 새로운 앨범 시리즈를 통해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메시지를 UN 연설 “Love Myself”의 메시지와 함께 생각하면, 진정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각자가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지, 그 구조에서 어떻게 서열이 매겨지는지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BTS가 자신의 위치에서 노래하면서, 위치가 바뀌어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파악하는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일면을 포착하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UN 연설 중에 “Find Your Name, Find Your Voice, Speak Yourself”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추상적인 자기애가 아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은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전달하는 것이 “Love Yourself”의 구체적 내용이다. 따라서 얼핏 ‘자신을 사랑해주세요’라는 탈정치적인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이 문장은 사실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 그리고 자신에게 특정한 위치와 존재 방식을 부여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라는 강력한 정치적인 요구다.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를 쌓아 가며 전달한 메시지가 삶과 일치할 때, 사람들은 거기서 진정성을 느낀다. 그 진정성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이때,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왜, 어떻게 BTS의 메시지에 감응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메시지의 전달이 일방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BTS는 자신들의 메시지를 설교나 강의처럼 일방적으로 가르치지도 않았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할 뿐’ 정도로 멈추지도 않았다. 청중들이,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그 메시지에 사람들이 반응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도록, 아니, 그래야만 의미가 생기도록 만들었다. 한두 편으로 끝나던 기존의 뮤직비디오들과 선을 그으며, 뮤직비디오 외에도 단편 영화나 미디어아트로 분류될 만한 영상들을 올렸다. 이러한 영상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하면서도, 의미를 개방해 두었기에 음악을 들으며 메시지를 접한 관객들은 영상을 해석할 때도 여러 영상과 노랫말을 결합하며 새로운 의미와 ‘이론’들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한 규범을 사람보다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법학자 켄지 요시노가 말했듯 규범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감추고 살아간다. 하지만 다른 이와 만나고, 연결되고, 서로의 삶에 접속한다면 사람들은 낯선 타인과 함께하기 위해 그 사람이 감추는 모습이 직접 되어갈 수 있다. 아미 커뮤니티에서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나이, 국가, 언어 등이 차별의 원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BTS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BTS의 매출과 순위라는 양적 요인을 통해 ‘마케팅 전략’을 세우려 하지만, 그런 접근방식으로는 구조와 메시지라는 질적 요인을 파악할 수 없다. ‘방탄현상’은 진정성 있는 메시지, 그 메시지와 공명하는 수평성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라는 시대정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직접 메시지에 개입하고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플랫폼의 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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