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화 성공가능성: 4
*스포일러 있음
[작가]
존 스칼지
[장르]
SF(스페이스 오페라, 전쟁) 멜로
[줄거리]
모든 노인들은 75세가 되면 사망신고서에 서명하고 우주개척 방위군(CDF)에 입대할 수 있다. CDF는 지구 정부와 별개로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입대 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역자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내과적, 외과적, 치료적인 계획이나 절차에 동의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명한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건강상태보다는 나으리라.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할아버지 존 페리가 75살 생일에 입대한다. 놀랍게도 CDF의 기술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은 20살 존의 육체를 만들어 왔다. 아니, 그냥 20살이 아니라 똑똑한 피, 비범한 감각, 강한 팔, 뇌 도우미 등이 장착된 최첨단 인간 병기 버전의 자신이다. 그 몸에 자신의 의식을 옮겨 새롭게 태어난다. 이제 평생 꿈도 꿔보지 못한 방법으로 언제 어떻게든 죽을 수 있는 우주전쟁을 시작할 일만 남았다.
[셀링포인트]
SF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오래된 할아버지의 재치
주인공 존 페리는 말장난으로 어떻게든 손자를 웃기고 싶어 하는 귀여운 할아버지 같다. 3부 내내 이어지는 시답잖은 아재 개그가 오글거리기보다는 독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편안함 덕분에 이상한 행성과 생명체, 클론 같은 게 나와도 비교적 쉽게 따라갈 수 있다. SF 물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같이 생경한 장르는 코미디나 청춘, 추억, 사랑 같은 아날로그 감성과 버무렸을 때 빛을 발하는 듯하다. 독자가 마음 붙일 수 있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도 80년대라는 향수 뿜뿜한 배경과 동네 친구들이라는 개념이 있었기에 더 즐겁게 몰입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의 전투
넷플릭스 <브레이킹 배드>는 평범한 물리교사가 엄청난 마약 제조범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이고, <오자크>는 평범한 재무 컨설턴트가 마약 카르텔 최고의 돈세탁 범(?)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이렇듯 평범한 사람이 다른 세계에 발 담가 최고가 되어가는 과정은 늘 흥미롭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이기도 하고. 특히나 그 다른 세계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세계라면 더욱 매력적이다.
이별에 대한 이야기
<노인의 전쟁>에는 유독 많은 이별이 있다.
새로운 우주에서 노인들은 전투를 위해 특수 조작된 육체를 받는다. 75년을 함께 한 오래된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옮겨갈 때의 기분은 노인이기에 더 극적이다. 짱짱한 스펙을 가진 다른 몸으로의 탈바꿈은 짜릿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나는 나와 정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옛 육체를 바라보는 존의 독백은 가장 마음이 찡했던 장면 중 하나였다.
그 몸은 슬퍼 보였고 낡은 여행가방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손을 뻗어 옛 얼굴을 만져 보았다. 따뜻했고, 숨결이 느껴졌다.
... 새로운 손으로 예전의 얼굴을 감쌌다. "고맙네. 전부 다 고마워."
나는 나에게 말했다.
전쟁을 하는 설정이다 보니 예기치 않은 죽음도 많이 발생한다. 일례로 존과 그의 전우가 온몸이 다 찢긴 채로 죽기만을 기다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뇌를 통해 소통할 수 있기에 전우는 힘없이 웃으며 존에게 전언을 보낸다. 죽음의 상황에서 내뱉는 낭만적인 바람은 비극을 극대화한다.
지금 갈 곳에서는 별자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한 편 노인들이 우주선에 탑승해 일생을 함께한 지구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은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린다. 우리 모두 이 세계에서 지지고 볶고 더럽게 살았어도 영원히 떠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는가. 모험도 돌아올 집이 있을 때라야 즐겁다. 존에게 지구에서 제일 그리운 게 뭐냐고 물으니 그는 결혼 생활이라고 답한다.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었던 그 느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여기엔 안정적인 기반이 없어. 내가 정말로 믿을 만한 것이 없어.
내 결혼 생활도 누구나처럼 오르락내리락 이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바닥이 단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난 그 안정감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던 시간이 그리워.
날 인간답게 했던 부분 말이야.
그렇기에 조는 우주선에서 랜덤 하게 친해진 6명의 친구들에게 빠르게 마음을 붙인다.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느끼고 전투 내내 지켜주려고 사력을 다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 줄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지 알지도 상관하지도 않는 우주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무엇이었다.
'명령에 따를 뿐'이라는 공허한 말
군대와 전쟁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도 살짝 나온다. 우주개척 연맹의 군대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외계 생명체를 죽이고 행성을 차지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그중 재수 없는 부대원 하나가 왜 대화를 시도해보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명령에 따를 뿐이라는 명목 아래 많은 악이 자행되었지요.
우리도 똑같은 변명을 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존은 우리 편의 이득을 위해 지성 있는 존재를 무조건 으스러뜨린다는 것에 대한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곧 상대가 누구든 내 사람들을 공격한다면 앞뒤 따질 것 없이 달려들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맙소사 앨런! 난 조금 전까지 세 시간 동안 지성 있는 존재를 벌레처럼 짓밟았어. 그게 문제야. 빌어먹을 내 발로 사람들을 밟아 죽였다고.
...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해. 최소한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지, 훌륭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짓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야 해.
자신의 과거가 궁금한 클론
하나의 흥미로운 반전은 조의 죽은 아내가 이미 우주 연맹에서 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보안 유지가 철저한 특수부대원. 알고 보면 사실 그녀는 그의 아내가 아니다. 죽은 아내의 몸뚱이만 빌린 전혀 다른 존재다. 말하자면 클론 같은 것 (엄밀히 말해 '복제'인간은 아니지만). 태어난 지 6년 됐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알고 싶어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호기심이다. 이를 통해 소설 <나를 떠나지 마>에서 나아가 자신의 몸 주인의 과거, 진짜 삶을 알고 싶어 하는 클론이라는 재미난 설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애환이
아니면, 특수부대 병사들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과거를 꿈꾼다는 걸 알고 싶나? 우린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라는 걸 알아. 거울을 보면 그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을 알아.... 그들의 삶, 그들의 아이, 그들의 남편과 아내를 상상하고, 그중 어느 것도 우리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