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년째 요가를 하고 있다. 엄마도 한때 오래 요가를 한 적 있고, 내 동생은 요가 강사인걸 보면 어쩌면 타고난 체질상 잘 맞는 거 같기도 하다.
요가를 한 뒤에 찾아오는 내 몸 깊숙이에서부터 뜨거워지는 그 기분을 사랑한다. 몸을 비틀고 쪼이고 기이한 자세들을 성공하면서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온몸의 근육과 관절을 하나하나 쓰다 보면 나의 몸 구석구석이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이 매일매일 다르다는 것도 느낀다. 오롯이 나에 집중하며 머리를 비운 뒤, 요가의 마지막 자세인 사바아사나(시체자세)로 온몸을 이완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생각들을 들여다보면 내가 요즘 무엇에 큰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나의 스승님의 스승님인 한주훈 선생님은 '명상의 수많은 방법 중 요가는 몸을 쓰는 가장 아랫단계의 방법일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힘겹게 힘겹게 정도 正道를 찾아가는 이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
나의 요가 스승님인 도현쌤과 만난 게 벌써 6년 전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요가는 숨이 차지도 않으면서 온몸의 근육을 쓰게하고, 동시에 나를 강제로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 차분해지는 순간에 중독돼서 한동안은 요가에 집착하기도 했다. 그땐 몸이 딱딱하고 굳어있던 때라 한자세 한자세가 고역이었다. 특히 나의 몸을 믿지 못해서 찾아오는 공포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하던지. (카르다피다아사나 같은 폐를 죄는 동작들...)
지금은 무릎으로 귀를 꼭 막을 수도 있는, 카르다피다아사나
매번 내가 집중하는 것이 항상 달랐다. 처음엔 비트는 동작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잘하던 게 그것이었으니... 그 이후엔 후굴로 발끝으로 머리를 터치하고 싶어서 장롱에 매달려 후굴을 하며 허리를 망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매일 하니까 에카파다라자카포타아사나는 이제 쉬워졌다. 그리고 요즘엔 살라바사나(유지태 요가자세), 핀차마유라사나 같은 역자세에 관심이 많다. 팔에 힘이 많아서 잘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팔힘보단 후굴력이나 균형감이 훨씬 더 필요로 하는 자세들인 거 같다.
이번 생엔 언젠간 되겠지.
왕비둘기 자세, 에카파다라자카포타아사나
요가를 하며 오래 균형을 유지해야 할 때는 눈앞의 한 점을 잡고 집중해야 하는데, 간혹 시야에 다른 사람이 보여 그 사람의 손끝이나 등짝을 보며 균형을 유지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엔 그 사람이 흔들리면 어김없이 나도 흔들린다. 눈으로 어떤 걸 보고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으면서, 삶의 목표도 다른 사람의 손가락 같은 흔들리는 무언가가 아닌 무너질 일 없는 벽 같은 걸 보고 잡아야 흔들리지 않겠구나 싶다. 나의 믿음이나, 가치 같은걸흔들리지 않게 만들어 잘 애용하는게 중요하겠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발리나 인도 같은 요가로 유명한 동네로 가서 오래 요가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