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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랑 Apr 10. 2020

4. 늙음에 대한 준비

할머니와 죽지 않을 병



 어느 주말, 나는 그녀의 셋째 딸인 나의 엄마와 함께 그녀를 오래도록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의 노년기를 낙관하기 쉽다.

 나의 경우 직장을 갖게 되면서 국민연금을 내기 시작했고, 이저곳에서 주워 들어보니 국민연금만으 퇴직 후 필요할 생활비와 노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 하여, 개인연금을 하나 더 들었다. 그렇게 나는 노년에 대한 경제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30년 뒤 암에 걸리고, 40년 뒤 뇌졸중에 걸릴 것이며, 50년 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결국 죽기 전 10년간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인같지만 실제로 이 사례들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소식들이며,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최악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보통의 삶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차례차례 닥칠 때 우린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까. 언젠가 시간이 도달하여 모든 감각들이 무뎌져 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때, 혼자서는 더 이상 멀리 여행을 갈 수 없게 될 때,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 주변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갈 때…  

 우린 차근차근 다가올 것들에 대해 그 모든 걸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렇지 못하다면 그러려니 지나치며 결국엔 무심해질까. 아니면 현실의 괴리에 몸사리치게 괴로워할까.



 그녀 늙어가면서도 자신이 아플 것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죽지 않을 병 따위가 우울증과 급격한 노화를 데려온 게 아닐까.


 그녀에게 있어서 노인의 표본은 아마 시어머니였기에 남들보다 더 낙관하였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남편이 죽고, 자식들이 떠나간 뒤에 그녀는 시어머니와 20년간 단 둘이 살았다. 그다지 살갑지 않던 남편과 다르게 그녀의 시어머니는 아주 친절했다. (뭐, 그마저도 그 시대의 시어머니 치고 친절한 것이겠지만, 그녀가 상대적인 편함을 느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 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한 세기 내내 베풀어 온 선행들로 언제나 모두에게 사랑받았고, 노년엔 귀도 말도 잃었지만 미소만은 살아있던 사람이었다.

 시어머니는 죽기 전 날까지 마당에 말려둔 콩을 깠다. 괜히 그렇게 쑤시고 다니지 말고 좀 가만히 있으라는 그녀의 성화에도 시어머니는 쉴 틈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100세 넘은 노인이 아주 느린 발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모든 곳에 손을 묻히고 다녔다. 시간이 다되어 육체가 꺼지기 전까지 시어머니의 정신은 온 곳이 살아있었다.


 그런 시어머니를 옆에서 봐온 게 그녀였다. 그녀는 늙고도 정정하던 시어머니를 보며 노년기를 맞이 했다. 그렇게 본인도 죽기 전까지 아프지 않고 오롯이 건강하게 깨어있을 것이란 잠재적인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깨져버렸고, 거기서 오는 배신감이 그녀를 한순간에 늙게 만든 게 아닐까.



그녀는 순식간에 전형적인 노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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