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천문학 강의 후에 : 걸작품의 걸작품

진천 천문대에서의 1박2일(2)

날이 흐려 별은 못 본 대신, 볼 수 있었던 달
 천문학 강의 후에 : 걸작품의 걸작품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혜를 사랑하면  ‘모름’의 즐거움을 모른다. 철학과에 입학한 후 가장 신기했던 것은 대부분의 학우들에게, 우주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특성이 자동 탑재되어있다는것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물음표 살인마’는 사실 고대 철학가들이 원조라는 학계 정설이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좋게 말하면 호기심인데, 나쁘게 말하면 의심이다. 모든 존재에 물음표를 던지다보면 최종적으로는 ‘나 자신’으로 회귀한다. 일상의 정신없음으로 지탱해오던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연쇄 작용 속에서 발견하는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안 들고 낯설다. 오히려 타인의 언어로 접하는 내가 더 나답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슬프게도 이에 갇혀살기도 한다.  


 처진 눈꼬리 덕분인지, 대부분의 첫 만남에서 나는 착해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이러한 평가가 솔직히 싫지는 않았다. 인간관계라는 시험에서 서류 전형을 통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하지만 관계 속의 나는 취업시장에 내던져진 취준생이 아님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멋들어진 자소설을 쓰고 깔끔한 정장을 입혀놓은 상태 그대로 소비되도록 노력해온 결과는 참담했다. 나의 소구점을 ‘착함’으로 잡은 순간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어떻게든 참아야만했다.


 천문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 혹은 두번 만나본 뉴페이스였기에, 편함이 전제되어있을때 나오는 나의 특성들을 은엄폐하려고 했다. 결함을 숨기는 과정은  알게모르게 나를 갉아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천문학 강의가 내게 주는 메세지는 인상깊었다.


 그렇다면 천문학은 어떤 학문인가. [천문학 : 우주의 구조, 천체의 생성과 진화, 천체의 역학적 운동, 거리ㆍ광도ㆍ표면 온도ㆍ질량ㆍ나이 등 천체의 기본 물리량 따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이다. 적어도 어학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된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토록 밋밋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아니다. 잠시나마 내가 답답한 가면, 즉 페르소나를 벗어낼 수 있게 해준 것이 천문학인지, 아니면 천문학을 전해주신 교수님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찌 됐건 그날의 나는 타인이 만들어내는 평가로부터 잠시 초연해질 수 있었다. 무신경함에 귀속되어 그동안은 나를 긍정하는 것에 무색했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걸작품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씀해주시는 교수님을 보며 교수님의 아들 K가 그렇게도 군더더기없는 성격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해주어야할 말을 대신해주시는 교수님의 온정은 그날의 무더위와는 다르게, 뜨겁지 않고 따스했다.


 천문대에서 돌아오는 길, 1박 2일 간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U에게 받았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이유는, 그 강의가 주었던 잔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소멸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뱉음과 동시에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서울로 돌아온지 10일이 지나 이제서야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그때 받은 영감들을 형언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국투어를 준비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