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 오월의 파도 속에서
첫 만남 : 오월의 파도 속에서
마스크 없이 외출하기가 꺼려진지 벌써 반년 가까운 나날이 흘렀다. 당연한 삶의 흐름이 낯설어지는 때가 찾아온다. 26년 인생동안 기껏해야 1년에 한 두번 한국을 떠나 타지로 향했지만, 본디 사람이라는 것은 억압에 익숙치 않은 동물인 것이다. 자유 의지가 아닌 불가항력에 의하여 이 넓은 땅덩어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자 지루함이 몰려왔다. 지루함을 멈춰줄 파도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루함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억겁의 시간이 끝난 후 갈증 해소는 더 청량하다. 5월 마지막 주 주말의 만남은 6개월간 지속된 갈증의 해소를 촉진시켜준 탈출구였다. 우연으로 만나 인연이 된 우리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기승전결이 완벽한 이야기였다. 굳이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여행하지 않아도, 먼 곳을 떠나온 것처럼 설렘이 가득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여행을 떠나온, 떠나는, 떠날 사람들 답게 일상의 파편들을 공유했다. 기억에 남는 대화 몇가지를 복기해보자면 N은, 일을 마치고 버스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나 도착했다고 한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N은 5월의 고통들을 이 만남을 고대하며 견뎌냈다고 했다. 그녀의 마음의 깊이가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J는 낯가림이 심하다고 했다. 순간, J가 먼저 단체 카톡방에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나, 세심하게 신경써주는 것을 내가 당연하게 받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누군가의 배려를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궁금했다. H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진로에 대한 회의가 멈춰지지 않는 나의 시선 속에서는, 톡톡 튀는 색을 가진 잘난 사람이었다.
여행 앞에서 내가 한없이 호의적인 이유는, 잔잔함 속에 파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것의 연장선이다. 다들 어떤 세계 속에서 이렇게도 멋지고 당차게 사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자극이자 무모한 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다.
오랜만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것 같다. 우리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있지만, 이로써 한 글로 엮일 수 있음이 신묘하기까지 하다. 소중한 인연들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글로서 남겨놔야지, 하면서도 대부분 기록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수조 수억번의 후회를 한다. 글쓰기는 언제나 옳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길고 긴 파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