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게으름은 존재하지 않아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

by gyuyeon 규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도 실패한 하루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어두운 방향만을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베짱이처럼 느긋하게 하고 싶은 일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개미 같은 사람이지만, 개미라기에는 겨울을 위해 제대로 준비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기에 불안감만 자꾸 커지는 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이야기라 그런지 ‘개미와 베짱이’는 아직까지도 힘이 세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부지런하고 착한 개미와 게으르고 이기적인 베짱이라는 너무나도 명백한 이분법의 렌즈를 통해 근면과 성실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시간들에 막연한 불안을 느낄 때마다, 무언가 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듣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숨을 죽이고 끈질기게 붙어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조용히 프레드릭의 빨개진 얼굴을 떠올리며 ‘개미와 베짱이’의 세계가 끊임없이 외쳐대는 부지런함에 대한 예찬에서 벗어나 게으름조차도 분명한 가치를 가지는 ‘프레드릭’의 돌담으로 달아난다.



프레드릭은 게으름과 부지런함을 선악으로 구분 짓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세상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부지런함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아무런 의미 없는 게으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조용하게 건네주는 책. 게으름에 대한 찬사인 동시에 세상이 무시하는 게으름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도 한 프레드릭은 앞뒤 가리지 않고 돌아가는 ‘개미화 프로그램’을 멈추고 베짱이인 채로 겨울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가만히 생각하게 해준다.



프레드릭은 풀밭을 따라 둘러진 돌담에 사는 다섯 마리의 들쥐 중 한 마리이다. 다른 가족들은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곡식을 모으고, 볏짚을 나르면서 열심히 일하지만 프레드릭은 가만히 앉아서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은다는 대답만 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새 다가온 추위에 돌담 속으로 파고든 들쥐들은 준비해 두었던 식량으로 겨울을 나지만, 곡식과 이야깃거리는 금세 동이 나버린다. 프레드릭은 들쥐들을 위해 그동안 모아두었던 햇살로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고, 간직해 두었던 색깔로 마음을 채워준다. 마지막으로 프레드릭의 이야기를 들은 들쥐들은 모두 프레드릭이 시인이라며 감탄하고, 그 말을 들은 프레드릭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도 조용히 ‘나도 알아’라고 대답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순간부터 변함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맨 마지막 장면이다. 자기 몸집의 몇 배는 될 커다란 돌 위에 올라 이야기를 모두 마친 후,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일 정도로 수줍어하면서도 시인이라는 찬사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프레드릭. 어렸을 때는 자그마한 생쥐가 부끄러워하는 그림이 귀여워서 마냥 좋아했던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조용하고 조심스럽지만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을 인정할 줄 아는 프레드릭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져서 몇 번이나 읽고 또 읽게 되는 장면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개미와 베짱이를 읽기 전에 프레드릭부터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은 애초에 프레드릭만 읽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해보곤 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프레드릭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나누어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신을 향한 칭찬 앞에서 조용히 얼굴을 붉히면서도, 부정하지 않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프레드릭의 모습에 내가 위로 받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것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개미가 되지 못하는 자신을 혼내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더욱 크다. 베짱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가지는 어린이가 없기를 바라는 동시에, 베짱이 쪽을 택하는 아이에게 잘잘못을 따지며 어른들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능력을 한계 짓거나 ‘착한 아이’,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차라리 마음 놓고 게으름을 부리며 세상에 쓸데없는 게으름은 없다는 것을 불안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책장 사이에 전혀 다른 의미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걸 발견하기도 하고, 어제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오늘 다시 읽은 장면에서는 미묘하게 달라진 내용을 찾아내기도 한다. 프레드릭을 읽으면서도 읽은 횟수만큼 매번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을 추억하는 마음에 다시 읽어본 프레드릭은 새삼 다른 목소리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쩌면 누구나 프레드릭이 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지만 모두가 프레드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한 응원으로, 묵묵히 프레드릭들을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어렸을 때라면 전혀 하지 못했을 생각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햇살을 모을 수 있는 프레드릭의 신비로운 힘이 너무 멋지고 부러워서 다른 들쥐들이 프레드릭을 칭찬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모두에게 박수를 받고 싶다’라는 감상이 전부였던 당시에는 프레드릭이 그저 대단하고 귀여운 생쥐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책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점점 네 마리의 다른 들쥐들에게도 마음을 두게 되었다.

프레드릭이 그토록 당당하게 선언한 ‘나도 내가 시인이라는 걸 알아’, 라는 말 뒤에는 사실 그의 몫까지 일하고, 식량을 비축하고, 겨울을 준비한 다른 들쥐들의 노력이 있다. 들쥐 다섯 마리에 불과한 아주 작은 집단일지라도 집단 내에서 튀는 행동을 하면 쉬이 배척당하기 마련인데 다른 들쥐들은 자신들과 다른 프레드릭을 괴롭히지도, 혼내지도, 강제로 일을 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매번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해대는 프레드릭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

자신의 행동이 가치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프레드릭의 신념과 단단한 마음도 멋지지만 쉽게 이해할 수 없더라도 무시하거나 고치려들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는 들쥐 가족들의 성숙한 배려도 대단하다. 시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는 여린 것을 보호하고 소중한 것을 지켜낼 줄 아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엇도 만들어내지 않는 듯한 시인이 무용하고 게을러보일지 몰라도 세상에는 시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회. 그렇기에 시인의 존재와 존립은 그들의 능력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아낄 줄 아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모여 진심이 될 때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프레드릭이 받은 찬사는 사실 시인을 만들어낸 들쥐 가족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의 프레드릭처럼 누구보다 먼저 내가 나를 알아주고 또 믿어줄 수 있기를, ‘나도 알아’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그리고 어른들이 굳이 뽐내거나 큰 소리로 자랑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해낸 일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조용히 스스로를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일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추위를 누그러뜨리는 햇살 같은 힘으로 전달될 수 있다면 더더욱 행복할 것이다.


프레드릭은 ‘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확장시켜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낼 용기를 준다. 또한 서로 존중하고 칭찬하며 기대어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게 하며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시인을 품어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나름의 분야에서 시인이 되어 서로를 조용히 뒷받침해주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계속해서 모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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