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과 귀인 "
“타인은 지옥이다” - 사르트르
사람의 운명적 해석에는 "누구나 모순된 존재"로 해석된다.
크고 넓은 기준에서는 비교적 일반적이며, 평범한 운명을 타고날 수도 있지만,
섬세한 시선으로 보면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은 모두가 조금씩은 다르게 타고난다.
"타인"의 기준으로 보면 "또 다른 타인"은 모두가 조금이나 많은부분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타인은 자신을. 타인의 시선에서 인식하고, 왜곡하며, 수용하고 개선하려 한다.
타인은 _
온전한 타인을 볼 수 없으며, 온전한 상태로도 인정하지 못하며,
기대나 실망, 감사함과 사랑이란 감정마저, 타인을 보는 또 다른 타인의 시선일 뿐이다.
운명학에서
태어난 띠(년)가 좋아야 하고, 띠보다는 태어난 달(月)이 좋아야 하며,
달보다는 일(日), 일보다는 시(時)가 좋아야 한다. 하지만 (년, 월, 일, 시) 보다
조상이나 부모, 형제복을 타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복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길흉화복"은 조상과 부모, 형제와 공유된 인연의
과업으로 일어난다는 믿음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자신으로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존재로 인정받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태어나 보니 가족은 랜덤이고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었다.
- 가족 안에서 자신의 본래의 존재로 온전히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이 있는가?
- 조건적인 관계인 타인이라는 친구나 연인에게서 자신만의 존재로 관계되며 살고 있는가?
- 자신은 : 자신만의 존재를 스스로의 가치로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타인이 지옥이 되는 것은 왜곡된 관점으로 서로의 관계를 규정하면, 타인은 지옥이 된다.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하며,
가족은 가족다워야 한다는 스스로의 인식이 만들어내는 기준이 너무 견고하다면
서로를 바라볼 때 가족은 타인이 되고, 지옥이 된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자신 스스로가 만들고, 믿는 기준이며, 자신도 변하고 기준도 변한다.
친구나 연인도 친구나 연인다워야 한다는 자신만의 기준이고, 타인과 달라야 한다는 착각일 뿐이다.
이 순간 상대를 보게 되는 나의 시선에서 의미가 좋은 면, 좋은 인연이고
시간이 지나 의미가 달아져서 좋지 않은 인연으로 보일 뿐이다.
타인은 귀인의 다른 모습이고, 귀인은 타인의 순간적인 감사함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운명학에서 조상의 부모의 운이 좋거나, 주변사람의 덕이 좋고 귀인을 만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타인을 귀인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상대와 대화할 때 말투를 살펴보면,
일단 수용하는 자세가 있다. 자신이 말하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라
온전이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보인다.
" 아 그렇구나, 아 그러시군요" , "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
배우고 온전히 수용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있다. 섭섭함이 있어도 바로 대응하거나
오해가 있어도 바로 지적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연민의 감정이 있고, 말이 적고 행동이 많으며,
상황에 대한 수용적 감각이 넓고 깊으며, 신중하다.
반대로 귀인을 타인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기준으로 세상을 만난다.대화의 표현을 살펴보면
"아니, 그게 아니고 ~ ", " 그건 아니지 " , 일단, 자신의 생각을 우선으로
주장한다. 배려라고 생각하면서 타인의 일상을 침해하며, 자신의 우월을
증명하려고 애를 쓴다. 부모나 자식의 관계, 부부, 친구, 연인의 관계에서도
타인보다 우위의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이다.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다면, 빨리 독립해야 하고
친구나 연인으로부터 조건적인 관계의 존재라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새로운 인연을 찾아야 한다.
봄이 되어야 잎이 나고. 여름이 되어야 꽃이 핀다.
완벽한 타인에게 강요당하는 삶의 변화에 대한 레시피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내 삶의 꽃은 나만의 계절에 피고, 내 삶의 운이 쇠하는 계절을 만나면 시들게 만련이다.
지금의 최선이 나중의 최악이 되는 일은 너무도 흔한 일상의 선택이다.
귀인이란, 타인의 얼굴로 다가오고, 귀인으로 잠시 머물다, 완벽한 타인의 모습으로 떠난다.
내가 스스로에게 귀인이 될 수 없다면, 귀인은 타인으로 인연 되고 타인으로 떠나게 된다.
가족이라는 타인은 완벽한 귀인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라는 귀인은 완벽한 타인의 모습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