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인도식"
오랫동안 "자기 연민"이라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시간이 있었다.
"자기 연민"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부터 스스로의 생각 속에 갇히게 되었고,
객관적 상황을 정상인으로 받아 들 일수 없는 상황들을 수 없이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한때의 슬럼프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냈으며, 곧 나아지겠거니라고 스스로 활동을 줄이고, 또 줄였다.
인간관계마저 점차 최소한의 관계만 남기고 혼자 만의 연민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의 다를 수밖에 운명, 성격, 본성, 생각 속에서 겨우 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멀리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도
스스로의 생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도무지 찾지 못했다.
운동도, 낯선 취미도, 강도 높은 노동이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철저히 혼자였으며, 무섭도록 고립되었고, 우울하고, 어두웠다.
밤이었으며, 겨울이었고, 밝은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다.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겨우겨우 하루만 버티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젊은 시절이었다. 안타까운 계절이고, 암흑같은 젊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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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 또 다른 색(방식)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 내게 허용할수있는 나만의 삶의 방향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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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생각나는 데로 찾아다니다
운명학을 만나고 그 속에서 답을 구하고자 했었다.
운명학에서 말하는 " 편인 도식"이라는 시기를 만난 것이다
- 편인 : 스스로가 세상을 수용하는 인식이 편협되고 주관적인 생각에 빠져서
- 도식 : 스스로의 마음과 몸을 돌보지 못하고, 삶의 욕구가 줄어들고
깊은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된다.
어렵게 찾은 지금의 상황에 대한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었다.
시간과 운의 흐름이 주인이었고,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삶을
경험하는 존재였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긴 겨울
어두운 시간속에서 겨우, 겨우 나는 살아가야 할 삶의 뿌리를 아주 조금씩
추운 땅속으로 자라는 고통을 스스로의 만들고 지냈다.
사촌은 가까운 시골에 전원생활을 한다
사촌은 농촌 출신이고 어려서부터 경험을 통해 농작물에 특징을 많이 알고 있었다
가끔 찾아야 가까운 텃밭에 심은 이런저런 신선한 야채들을 얻어와서 먹는다.
그날은 야채의 겨울나기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순간의 스치는 생각으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시금치, 상추, 양파 등의 겨울을 나는 채소들은 온전히 겨울을지난 채소가 깊은 맛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계절에 노지나, 하우스에서 수확되는 채소와는 다른 야채 본연의 깊은 맛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였다.
추운 겨울을 난 "겨울 채소"와 " 자기 연민에 빠진 나"를 비교하며 알게 되었다.
그저 견뎌야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피어날 삶을 위해
삶의 뿌리를 만드는 깊고 밀도 있는 시간이라는 보내고 있다는 것을
서둘지도, 조급하지도 않게 그저 먹먹한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운명학에서 정해진 자기 연민의 시간을 거스르고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경험해 보며 지냈다.
운동, 서예, 교회, 여행, 부적, 무속, 모임, 독서 등
밖에서 답을 구하고자 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운 자신을 기억하게 된다.
지금도 운명학에서 말하는 겨울의 시간이지만,
예전 같은 연민의 시간 속에서도
비교적 불편하지 않고, 자유롭고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내가 경험했던 방법 중에 가장 효과가 좋았던 방법은
기존의 삶을 지우는 것이고 새로운 삶을 만드는 것이었다.
1. 버리고, 또 버리고 버렸다 : 미니멀리즘의 삶으로 다시 살아가보자
책을 버리고, 옷을 버리고, 쓰지 않던 물건들을 무식하고, 과감하게 버렸다.
버리는 책과 소유한 책의 비율이 기존의 삶과 변화된 삶의 비율이라 생각했다
최소한으로 남겨진 옷과 남겨진 물건들 외에는
ㄷ새로운 삶의 도구로 채워 나가고자 했다.
2. 인간관계도 오래된 물건을 버리는 것처럼 : "셀레지 않으면 버려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이 아니었다.
많이 필요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기준도 아니었다.
내가 나로 존재해도 불편하지 않을 관계로 정리하였고,
내 삶을 지키는 적정 기준의 선을 한번이상 넘었던 사람부터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한 관계는 전화나 카톡이 와도 받지 않거나 무시하면서
용감하게 정리했다.
3. 내 생각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으며, 단순하지만, 밀도 있게 살기로 했다.
편협하고 주관적 생각이 "자기 연민"이라고 규정하고
나 자신의 감정과 이성을 기준을 의심하며, 떠오르는 생각에
대립되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맞서려고 노력했다
사고의 균형을 만들어 가고자 했으며, 불안속에서도 이유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
"내 안의 나"를 타인처럼 대하기 시작하면서 편하게 되기 시작하였다
본래의 나와 운명학에서 말하는 운이 만들어내는 자신의 변화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의심하고, 다독거리고, 다른 생각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생각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었던 같다
단순하지만, 밀도 있는 삶을 위하여
"스쳐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생각"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습관이 생겼다. 버리고 나아가는 단순함이 필요했다.
일상의 작은 순간에도 온전히 감각과 이성을 몰입하고.
이완의 순간에는 비워진 감정과 생각으로 살았다/
힘을 쏟아서 밀도를 만들 때와 편하게 나를 대하는 이완의 선명한 구분이 필요했다.
시간은 주인이고 사람의 운명은 시간의 주위를 움직이며 지나치는 행성의 변화로
인해 사람에게 나타나는 생각의 변화일 뿐이다.
운명의 변화를 꿈꾸며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역행자와
운명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순행자 중에
나는 그저 "역행자"일 뿐이고, 지금은 겨우, 조금은 운명이라는 틀을
바꾸어 가며 살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뿐이다
>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과 온전히 만나서도 자유로운 자신만의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