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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Oct 17. 2015

2008. 10. 15

나는 주사파였다.

2007년 봄, 나는 주사파였다.
여유있는 4학년을 위해 빠듯한 학사일정을 지나온 결과 주사파가 된것이다. 목요일. 어정쩡한 요일 이었지만 주말과 다른 여유가 있었다.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나름의 브런치를 먹고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열람실을 지나 자료실이 내 아지트였다. 일층 매점에서 물 한 병을 사들고 삼층 자료실에 들어서면 왼편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오른편은 문학이었다. 오른쪽에서도 벽쪽으로더 들어가면 유럽문학의 자리였다. 오만과 편견으로 시작해서 위대한 개츠비로 마감한 영미문학을 뒤로하고 당시 나는 프랑스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어릴적 추억의 꼬마 니콜라가 시작이었다. 책을 한 가득 대출해서 동아리방으로 옮겨다놓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들곤 했는데 나중에는 그 마저도 귀찮아 책장 앞 바닥에 철푸덕 앉아 손이 가는대로 꺼내 읽고  또 읽었다. 당시에는(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일본문학이 인기가 많아 예약대기까지 해야했지만 유럽문학쪽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어도 누구하나 비켜달라는 사람없으니 아침부터 신나서 자리 잡고 놀았다. 그렇게 나름의 휴일을 보내고 금요일에만 학교에 나오게 되니 주사파라는 것은 참으로 좋은것이었다.


2007년 가을학기에도 주사파였다.

노는김에 제대로 놀 생각에 휴강일을 금요일로 잡아놓고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도서관에서 책이랑 놀고 저녁에는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니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얼마나 달콤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디자인 전공이었지만 따로 취업을 하거나 디자이너를 할 생각이 없던 터라 그런 시간들은 낙서를 하거나 주로 책을 읽었다.

졸업하고 그림준비를 한참 하던 때 일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생이 오랜만에 교회에 출석하여 목사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그 친구 입에서
"저 주사파에요 목사님." 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목사님은 당황한듯 움찔 하시다가 그게 무슨 뜻인지 조심스레 물으셨다. 아직 애들이 그 말을 쓰는구나.. 흥미로운 말이었고, 옛 추억이 새록새록한 돋는 말이었다.

주사파. 일주일에 4일 학교가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주사파라고 불렀고, 아주 오래전에도 주시파라는 말을  다르게 쓰는 줄은 알고 있었으나 굳이 알려고 들거나 별반 관심이 없었다. 단지 주사파가 되면 좋거나 고학년이 되어 취업압박에 시달릴 나이구나.. 하며 서글퍼하거나 그랬다. 또래 사이에서도 꽤나 아는것 많고 사회면에서 한입 걸쭉하게 내뱉는 나였지만 주사파가 본래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저 나만의 휴일을 즐길 뿐.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사파
주체사상 파.
내 나이 서른둘. 주체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요즘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운다니 실로 놀라운일이 아닐수없다. 요즘아이들 도덕시간에는 더욱 학문적으로 깊게 들어가는가보다. 철학과에 진학해 볼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지식이 너무 바닥이라 안 하길 잘 한것 같다. 요즘 아이들도 배운다는 주체사상도 모르면서 무슨 미학이니 이념이니 배운단 말인가. 민주주의가 뭔지도 가물가물해지는 요즘인데.. 아,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였지. 하하하하..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림쟁이로 살면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이코노미지 부터 사 볼까 싶다.


http://m.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129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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