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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Oct 19. 2015

2015. 10. 19

Feel disgusting


Feel disgusting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평가하는 말이었다. 뚱뚱하거나 통통하다는 내용은 너무 당연하게 나오는 내용이었지만 촌스럽거나 혐오스럽고 몸이 싫다거나 끔찍하다고 말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거울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놀랍게도 거울을 보는 시간만큼 내 모습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너무 뚱뚱했고 눈이 너무 작았고 코에는 뾰루지가 났다. 내 모습을 싫어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주변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친구관계에서도 불만이 많아졌고 불편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볼것없이 형편없고 끔찍한 사람으로 단정 지었다.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했다.

알렝 드 보통의 '불안'에도 이런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아주 오랫동안 감춰온 속사정이 드러나는 것 같아 책을 마저 읽지 못했었다. 그리고 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사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도 알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어.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교복 입은 아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한참 민감할 나이인 만큼 끝없이 거울을 보거나 빗질을 하고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능숙하게 화장을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보고 있는 거울은 늘 지저분했고 빗질은 앞머리만 했다. 뒷머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허다했는데 거울로 보이는 앞머리만 신경 쓰고 나머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얘! 빗을 꺼면 뒷머리 좀 빗거라.. 뒤에서 보면 산발한 귀신같단다.' 화장은 더 재미있다. 얼굴은 찹쌀떡, 입술은 뱀파이어, 눈썹은 일자로 획일화한다. 가끔 과한 아이라인과 과한 입술, 과한 볼터치로 완성작이 눈물 나게 웃기긴 하는데 아이들은 거울을 보는 만큼 자신의 얼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혐오스러워하던 내 얼굴을 치켜들고 민 낯에 안경으로 당당히 다니는 지금이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여전히 어깨 깡패에 도시락통 같은 얼굴을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체비만은 말할 것도 없는 악성 고민거리였고, 잘한다는 시술 광고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본능이었다. 약 이십 년 만에 만난 첫사랑을 놓친 그때도 미련퉁이였다. 다시 만난 그날 스스로 만족스러운 몸이었다. 마감으로 헬슥해져 있었고 예측 못한 상태에서 3kg이나 빠져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남을 앞두고 같은 마감으로 3kg이 다시 찌면서 살을 빼고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었고  결국 세 달이라는 시간을 잡아먹었다. 야속하게도 첫사랑은 그 사이 애인이 생겨있었고 바다에 함께 가자고 한 약속도 저버린체 결혼까지 골인했다.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그때 그냥 만났다면 지금 어땠을까 가끔 궁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같은 내 몸인데.


시력이 나빠 렌즈를 낀 지 십 년이 넘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쩔 수 없는지 이제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따끔거리고 이물감이 심해 중요한 모임 아니면 잘 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작은 눈은 안경으로 가려 버렸고 안경을 끼니 화장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서 외출을 삼가게 되었다. 철저하게 지켜온 십 년이었다. 안경을 끼고 민낯으로는 외출하지 않을 것. 딱히 나갈 일도 없었지만 아주 오랜 습관이었다.


혐오하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내 몸을. 납작했고 퉁퉁하며 땅딸만 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모습을 해도 예쁘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마감 때문에 삼일 동안 세수를 하지 않고 머리를 감지 않았어도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으며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익숙해지자 그의 눈곱은 내 담당이 되었고 어떤 상태를 해도 부끄럽거나 싫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다른 이성에게 잘 보일 일이 없어지니 행색이 간편해지면서 소비가 줄고 무엇보다 심리상태가 편안해졌다. 가끔은 내가 참 하얗고 보드라우며 코가 이쁘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좀 작지만 눈동자가 갈색이라 멋진 것 같고 당근 같아 보여서 싫었던 (나는 당근을 싫어한다.) 손가락 때문에 기르던 손톱은 늘 짧게 다듬어져 있어 찢어질 걱정이 없고 모두가 걱정하는 하체비만은 다른 아가씨들의 희망을 주기 위해 과감하게 미니스커트와 단화를 신어준다. 덕분에 넘어져서 다치는 일이 줄어들었고 반창고가 서랍에 쌓이기 시작했다. 도시락통 같은 얼굴형은 질끈 묶어서 더 드러나게 두고 산적 같은 어깨는 허리를 펴서 바른 자세로 가려버렸다. 더 드러내는 것이 더 감춰지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원피스 수영복보다 비키니를 입는 것 같은 원리인데, 늘 까먹고 가리기 십상이다.)  쉽지 않았다. 하나씩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사랑이 필요했다.


매일 매번 만날 때마다

 "자기는 왜 이렇게 이뻐?"라고 속삭이는 사람이 옆에 있다.


자기 몸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너 자신을 사랑해."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누구도 힘들어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이렇게 고쳐 말해주면 좋겠다. "넌 예뻐."라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디가 예쁜 지도 함께. 자기혐오는 혼자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필요하고 그래서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 누군가를 만나면 누구든지 하나씩 장점을 말해주겠다. 자기사랑의 씨앗을 심어주는 첫걸음이 될 것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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