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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Nov 11. 2015

2015. 11. 11

참견 또는 친절

빼빼로데이인 것을 잊고 외출했다가 폭발 직전의 버스들을 내리 두대나 보내 놓고 집에 갈 걱정이 들어 가까운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가할 시간을 틈타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횡단보도에 한 할머니가 도로 쪽으로 나가 서있었다. 신호가 바뀌어 앞쪽 차선 차들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고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 위험해요!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할머니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듯하여 손을 뻗어 팔을 붙드는데 돌아보시며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빨리  건너갈 거니까 괜찮단다. 거대한 버스가 쏜살같이 달려오자 내 맘은 더 다급해졌고 뒤쪽으로 잡아끄는데 나 혼자 역부족이었다. 어디선가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할머니를 강하게 잡아끌며 "이쪽으로 오라니까 "소리를 쳤다. 결국 할머니는 뒷 걸음질 치다가 인도 턱에 발이 걸렸고 우리 셋은 우르르 뒤로 나뒹굴었다. 이게 뭔 날벼락인가.. 할머니는 껄껄껄 웃으셨고 나는 이 엄청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소주향이 솔솔 풍기 는 것이 알코올에 흠뻑 취한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더 과간이었다. 화를 내시며 술 마셨냐고 따지더니 급기야 아들 딸 있냐고 묻는다. 할머니가 신이 나서 아들 딸 다 잘 있다고 대답하자 아들  부끄럽게 술 마시고 다니냐며 역정을 낸다. 나는 할머니에게 집이 어디시냐며 일어나자고 팔을 붙들고 끙끙대며 진땀을 흘리고 할머니는 남의 아들 딸을 왜 신경 쓰냐고 욕을 하셨고 아주머니는 뭘 잘했다고 난리냐며 삿대질을 하며 싸울 기세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노력이 허사가 되자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고 나도 화가 났다. 아주머니에게 할머니를 자극하는 말을 삼가도록 권하며 더 소리 지를 거면 집에 먼저 가시라고 큰소리를 냈다. 할머니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해댔다. (에휴.. 고맙다니요.. )

신호가 두 번이나 지나서야 합심하여 길을 건널 수 있었고 할머니는 나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사실 딱히 할 일도 없었고 할머니가 산다는 아파트도 대강 아는 곳이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셋이 팔짱을 끼고 비틀비틀 걸어가는데 이 무슨 웃픈 상황인지.. 누가 보면 아주 다정한 3대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주머니가 여전히 할머니를 쿡쿡 찌르며 왜 술을 먹고 또라이짓이냐며 화가 나게 했다. 할머니가 너는 안 마셨냐고 되받아 치자 낄낄거리며 본인도 한잔 걸치셨단다.

아... (힘들다.)

갑자기 두 분이 서로에게 애교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신나 하시는데, 너도 먹었냐 나도 먹었다 어쩌고 저쩌고.. 정말 전개가 급 진전이다. 멀쩡한 내 정신이 부끄러워지며 갑자기 피곤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문 닫은 안경집 앞 계단에  걸터앉게 되었고 나는  또다시 상황 파악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내 팔목과 허리가 매우 아팠으므로 앉아서 한 숨 돌릴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은 여전히 투닥거렸고 나도 거기에 맞장구 치며 실소를 터뜨리는 여유도 되찾았다. 나도 한잔 했다면 같이 소리를 지르며 함께 신나 했을까. 웃기기도 하고 지나가는 수 많은 커플들 사이에서 내 처지가 한탄스럽기도 했다. 내가 크게 한번 웃음을 터뜨리자 갑자기 아주머니가 아가씨는 집에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두 분의 분위가 좋았고 사실 할머니가 사시는 아파트는 뒤로 조금만 가면 있었기에 안심이 되었다. 정말 잘 가실 수 있냐고 묻자
"~ 그럼 그럼. 바로 요오긴데!  엄청 가차워! 금방이여."
라고 또 활짝 웃어주신다. 배가 고팠고 피로해진 나는 두 분에게 인사를 하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탈 버스가 진입 중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버스를 타고 창가에 서서 밖을 보니 아주머니가 보인다.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는 모양이다.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어 글로 남겨보기로 했다. 핸드폰에 고정된 시야가 멀미를 몰고 왔지만 지금 나는 버스에서 내려 벌써 집 앞이다. 

끝내주는 막대기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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