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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Jul 01. 2018

영어: 고맙고 화가 나고 미안하고

영어는 늘 애매한 존재였다. 7살 때 시작했으니 모국어와 엇비슷하게 공부했고 아직도 하고 있지만 선뜻 누군가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말하기가 뭐했다. 학교 다닐 때 영어 성적도 좋고 얼추 의사소통이 가능한데도 그랬다. 심지어 영어로 밥 벌어 먹는 직업도 아닌데 괜히 영어 앞에선 위축됐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잘해야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교육을 받아온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내가 배운 대로라면 영어가 어디서든 다 통해야 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어도 무슨 언어를 쓰고 있는지 정도라도)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어뿐. 상대가 알아듣든 그렇지 않든 단어 하나만이라도 알아듣고 말이 통하길 바라며 매번 나는 꿋꿋이 영어로 말을 건넸다.      



미국식 영어에만 익숙했던 나는 line 대신 사용하는 queue란 간단한 단어조차 생소했다. 

특히 남미에선 영어가 통할 때보다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언어 장벽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을 때, 영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이 ‘짠’하고 나타나 해결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직원 얼굴과 통역해주는 이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땡큐(thank you)”를 연발하곤 했다.      


영어권 국가 사람들에게도 이따금 머뭇대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대화를 나누다 “근데 너 한국에서만 살았다며 영어 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렇게 잘하진 않는데 고마워”라고 답하곤 했다. 그들은 그저 동양인이 영어를 얼추 하는 것이 신기해 건넨 말일지 모르겠지만 난 괜히 대답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여행 중 별 것 아닌 상황에서도 늘 “쏘리”와 “땡큐”를 달고 살았으면서도 이 말에 ‘고맙다’는 답을 하는 게 어색했다. 이게 과연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 고맙다면 내 영어 실력을 인정(?)해준 것이 고마운 걸까 아니면 그 얘길 들을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한 스스로에게 고마운 걸까. (시간이 많은 여행자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상념에 잠기기 일쑤다.)



아주 가끔씩은 영어 때문에 화가 났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영어를 못하는 직원이 ‘난 네가 하는 말 못 알아들겠어. 그러니 어쩌라고?’란 표정과 몸짓을 보일 때면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시골에 있는 로컬 식당도 아니고 여행자를 상대하는 곳이라면 기본적으로 영어가 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어권 국가가 아닌 곳에 가서 영어가 안 통한다고 짜증을 내는 심보가 이상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드를 가져보겠다고 직원과 승강이를 벌었다. 워킹 투어 중 잠시 들른 거라 마음이 급한데 직원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 받지 못하고 다른 곳에  한번 더 들러 하나 챙길 수 있었다


순간순간의 분노를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다. 그 나라 언어로 말을 못하는 나를 탓하기 전에 상대가 ‘영어’를 못한다고 파르르 성을 내다니. 고작 영어 하나 조금 할 줄 아는 주제에. 모로코에 갔을 때 경찰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다. 영어로 질문하자 경찰이 손을 내저으며 혹시 불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내 쪽에서 고개를 가로젓자 “그럼 스페인어는?”이란 답이 돌아왔다. 불어, 스페인어, 아랍어 모두 가능하지만 영어는 못한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떠듬떠듬 읽는 스페인어와 도통 읽을 수 없는 아랍어. 


많은 경우 우리는 영어 때문에 미안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고, 어떤 누군가들도 내게 그랬다. ‘말’ 없이도 하루 종일 즐겁게 다녔지만 중국인 언니도 헤어질 때 자신이 영어를 못해 미안하단 말을 건넸다.      


언니를 만난 건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운전석 창으로 펼쳐진 3D 영상같은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옆 사람이 휴대전화를 쓱 들이밀었다. 화면엔 영어로 ‘혹시 아시아 사람이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답하자 반색하며 “현빈” 이름을 여러 번 외쳤다. 급기야 전화기에서 현빈, 송중기, 송혜교 등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며 이름을 나열했다. 거기서 대화가 끊길 줄 알았는데 그녀는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관계는 좋지 않지만, 민간은 그럴 이유가 없다. 나는 한국이 좋다'는 메시지를 적어 보내줬다.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거나 리액션 만으로는 대화가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답을 해야 할 때면 언니 휴대전화를 빌려 구글 번역기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한국어 자판이 없어 영어로 써야만 했다. 이상하지만 그녀도 내게 한국어가 아닌 영어 번역을 보여줬다.)     



완벽했던 나의 여행 메이트


대화는 '여행'으로 옮겨갔다. 장기 여행 중이란 얘기에 언니는 ‘난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해’라며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터키, 요르단,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 간단한 인사말 말고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사실 hello나 thank you란 말도 거의 쓰질 않았다)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버스에서 내릴 즈음, 그녀는 '혹시 택시 타?'라고 물었다. 숙소까지 버스를 탄다고 하니 '혹시 같이 가도 돼?'라고 물었다. 휴대전화 번역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을 한 번 가리키고 나를 가리키고 허공에 검지와 중지로 걸어가는 시늉을 했다.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대꾸했다. 우리 둘이 대화할 때면 구연동화를 하듯 손동작이 커졌다. 그리고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버스 앞에서 짐과 사투를 벌이는 나를 보며 그녀는 조용히 내 짐 보따리 하나를 들어주었고, 나는 버스 요금을 먼저 내며 금액과 방법이 얼마인지 그녀에게 행동으로 알려주었다.      


인연은 알함브라까지 이어졌다. 둘 다 예약을 못 하고 온 처지라 다음날 새벽에 나가 줄을 서야 했다. 그녀는 또 다시 자신을 가리키고 나를 가리킨 뒤 손가락 두 개로 걸어가는 모양을 만들었다. 구글 번역기 도움을 받아 만날 곳과 시간을 정하고 헤어졌다. 입으론 "밍 티엔 찌엔(내일 봐)"라고 인사를 했지만 과연 다음날 제대로 만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6시 30분. 그녀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내가 머물고 있는 호스텔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조금은 어색한 동행이 시작됐다.     



알함브라


알함브라 입장 후엔 따로 또 같이 여행이 시작됐다. 각각 한국어와 중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귀에 꽂았다.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알아서 설명을 듣고 끝나면 서로 눈을 맞춰 ‘끝났으니 이동해도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행 내내 미안한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적극적으로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멋진 앵글을 발견할 때마다 가서 서보라고 손짓을 했다. 머뭇대며 가서 서면 그녀는 다가와 정확한 위치와 자세 등을 몸으로 설명해줬다. 고마운 마음에 나를 가리키고 그녀를 가리킨 뒤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면 그녀는 쑥스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점차 말이 없는 대화가 익숙해졌다. 반나절 함께 하는 동안 나는 그녀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청도에 살고 있고, 중국 고문학을 전공해 영어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 나보다 4살이 많고, (그래서 이름 대신 한국 문화대로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닌다는 것. 생각해보면 언어가 통했다고 해도 이 이상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것 같다.     


헤어질 타이밍에 그녀는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그녀는 상하이 음식점을 알아두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지켜보며 영어 없이 여행하는 그녀의 비법을 간파했다. 비행기나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이동할 때면 '택시'를 이용한다. 목적지 주소만 기사에게 보여주면 되니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식사도 중식당에 가면 걱정 없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급하게 통역이 필요할 때면 지인에게 전화해 통역을 부탁한다. 실제로 숙소 예약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언니는 누군가에게 전화해 문제를 해결하게 했다. (내겐 한없이 부드럽게만 보였는데, 속사포 중국어로 전화기 너머 인물에게 얘기할 땐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이번엔 내가 제안을 했다. '스페인에 왔으니 스페인식으로 먹어야지.' 말을 던지고 그녀를 전날 내가 가봤던 타파스 집으로 이끌었다. 맥주 한 잔을 주문하면 타파스가 공짜로 딸려 나오는 곳이었다. 그라나다는 이런 집이 많아 타파스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이 많다. 


메뉴판을 받아 든 그녀는 약간 긴장됐는지 두리번거리다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구글 번역기(이번엔 다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를 켜 메뉴판에 갖다 대자 중국어가 오버랩됐다. 그러더니 자신 있게 메뉴를 골랐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내가 영어를 못해서 미안해. 중국에 돌아가면 꼭 영어 공부할 거야'라고 말했다. 의사소통이 안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는 맥락에서 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이상했다. 자신이 한국어를 못해서 혹은 내가 중국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왜 우리는 '영어'를 못해서 미안해야 하는 걸까. 


돌이켜보면 어차피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나는 그녀에게 한국말이 아니라 계속 영어로 얘길했다. 그것도 참 이상하다. 



*표지 사진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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