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친구가 있다. 그녀는 서울에 혼자 와 대학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다. 삶에 지쳤을 때 그들처럼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서울내기인 그녀는 한탄하곤 했다. 나고 자란 곳이지만 서울에 있는 집을 ‘고향’이라 부를 순 없다고.
시간이 지나고 언제부턴가 그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떠올리면 푸근해지고 언제든 나를 반겨줄 것 같은 ‘고향’이 나 역시 간절해졌다. 무언가 할 힘이 바닥났을 때 지금 발붙이고 있는 곳을 떠나 언제든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내게도 있었으면.
잠시 한국을 떠나며 더블린이 내게 그런 곳이 되길 바랐다. 한번쯤 외국에 살아보고 싶다는 내 소망은, 어쩌면 마음의 안식처가 될 곳을 세상 어딘가에 한 곳쯤 마련해두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고작 6개월 살았던 곳을 고향에 비할 순 없겠지만 더블린을 떠난 뒤엔 ‘아일랜드’ ‘더블린’이란 단어만 들어도 괜히 반가웠다. 그 단어 속엔 그때의 여유, 자유, 평온이 녹아 있었으니까.
“퇴사하고 여행 간다”는 선언을 했을 때 다들 왜 더블린이냐고 물었다. 파리나 런던, 뉴욕처럼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더블린이란 이름을 듣고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가 없어서일지도. 나에게도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그저 체류 가능한 비자를 받기 편해 골랐을 뿐이었다. (6개월 이상 어학원을 등록하면 8개월 체류 가능한 학생 비자를 받을 수 있다. 2016년 기준)
수개월을 보내고 온 지금도 누군가 더블린에 가니 갈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사실 떠오르는 곳이 많지 않다. 그래프튼 스트리트, 기네스 팩토리, 더블린 성, 트리니티 대학교, 킬마이넘 감옥 정도. 내겐 이곳들이 다 좋았지만, 힘들게 휴가내고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온 친구에게 런던이나 파리 대신 더블린으로 오라고 하기엔 좀 미안한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유가 그리운 사람에겐 이곳의 거리를 그냥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블린은 걷는 즐거움이 있는 도시다. 도시의 건물들은 대부분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한다. 걷다보면 과거 유명인의 집이었단 안내판을 단 건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와 제임스 조이스가 살았던 집도 용도는 다르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제임스 조이스 소설 <율리시스> 속 공간이자 실제 약국이었던 ‘스위니’도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는 독서 모임 공간으로 쓰인다) 빌딩의 문은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고, 집 앞 작은 정원은 집 주인들의 성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바로 지나치질 못하고 남의 집 사진을 찍곤 했다.
매일 아침이면 집에서 시티센터에 있는 어학원까지 20분 정도 걸어갔다. 집 앞엔 작은 운하가 있는데, 날이 추워지면 백조들이 물 위를 노닌다. 도시 한 가운데 새하얀 백조들이 있다는 게 신기해 매일 오가면서도 매번 멀찍이서 백조들을 구경하곤 했다. 조금 더 걷다보면 ‘스티븐스 공원’이 나온다. 도심 속 쉼터 역할을 하는 곳으로, 날이 좋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햇볕을 즐긴다. 친구와 벤치에 마주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잔디에 누워 잠을 청하고 때로는 여럿이 빙 둘러 앉아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이 공원의 풍경이다.
학원이 있는 시티센터엔 그 유명한 그래프튼 스트리트가 있다. 이름만 듣곤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영화 <원스> 첫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버스킹을 하던 곳이라고 하면 다들 ‘오’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 길엔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버스커들이 늘 자리를 지킨다. 그들 때문에 매번 그래프튼 스트리트를 지나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버스킹은 허가를 받은 사람들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일정 시간 동안만 하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연주하기 때문에 쾌적하게(?) 각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더블린에선 ‘펍(pub)’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가장 유명한 ‘템플바(The Temple Bar)’가 있는 구역에 가면 펍들이 쭉 늘어서 있다. 다른 도시에도 펍 크롤(pub crawl)이 있지만, 이곳만 할까 싶다. 한 잔씩 술을 마시며 펍을 도는데, 펍마다 라이브 밴드가 달라 분위기뿐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재미도 있다. 물론 여기 말고도 구석구석에 유명한 펍들이 숨어 있어 하나하나 돌아보는 것도 더블린을 즐기는 방법이다.
펍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여기 펍은 낮부터 연다. 특히 ‘게일릭 풋볼’이라 불리는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낮부터 펍이 북적인다. 줄을 설 정도. 다들 맥주를 한 잔씩 들고 서서 경기를 본다. 아이리쉬 선생님 설명에 의하면, 게일릭 풋볼은 지역별로 아마추어들이 경기를 펼친다고 한다. 자기 지역을 응원하는 건 당연하고 도시가 작다보니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 열띤 응원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처음에 적응되지 않았던 펍 문화 중 하나가 잔을 들고 밖에 나가 마시는 것. 아침 일찍 길을 지나가다보면 펍 밖에 유리잔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처음 더블린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시내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 공항버스표를 사는데, 직원은 짐을 가득 든 내가 길을 헤맬까 걱정됐는지 내게 숙소 주소를 확인하며 버스 번호와 내릴 정류장을 재차 설명해주었다.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버스에서 내릴 땐 한 남성이 내게 짐을 내리는데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왔다. 더블린에 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지도를 들고 다녀야 했던 시기, 지도를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괜찮은지 물으며 먼저 다가왔다. ‘외국인에게 가장 친절한 도시’라는 수식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더블리너들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데 거리낌이 없다. 더블린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무슨 책 읽고 있어? 재미있어?” 말을 건네 깜짝 놀랐다. 이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 뒤엔 나도 자연스럽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때론 좋아보였다. 버스킹이 끝난 뒤 다가가 “정말 좋은 공연이었다”로 시작해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홈리스에게 돈을 건네고 그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늘 무슨 이야길 나누는지 궁금했지만 제대로 듣지 못했다. (대형 마트 입구와 시티 센터에서 홈리스를 자주 볼 수 있다. 더블린에선 늘어나는 홈리스가 사회적 문제 가운데 하나)
솔직히 말하면 거리에서 스치듯 들리는 더블리너들의 대화는 늘 알아듣기 어려웠다. 더블린을 벗어나 시골로 갈수록, 나이든 사람일수록 더더욱. (이건 더블린 사람들도 동감하는 바다) 여행 중 만난 호주 친구에게 영어 공부하러 더블린에 잠시 머물렀다고 했더니 “나도 그들의 악센트를 알아듣기 힘든데 거기서 무슨 영어 공부를 해”라고 웃으며 말했다.
더블린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된 건 ‘독립과 분단’의 역사 때문이었다. 800여 년 영국 식민지 아래 있던 아일랜드는 1916년 ‘부활절 봉기(Easter Rising)’를 일으키며 독립 의지를 다졌다. 우리나라 3.1운동과 비슷한 움직임. 봉기가 바로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꾸준히 독립 전쟁을 전개한 결과, 영국이 1921년 휴전 제안을 하게 된다.
문제는 남아일랜드(현 아일랜드 공화국)는 독립시키고, 북아일랜드는 영국 자치령으로 남기겠다는 내용인 것. 당시 아일랜드 측 협상 담당자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반쪽짜리 독립을 모두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에이몬 데 발레라 등 반대파가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내전이 일어났다. 영국의 안대로 아일랜드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뒤 통합을 원하는 가톨릭계와 영국 영토로 남길 원하는 신교도 주민 간 유혈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지금과 같은 평화로운 상황이 찾아온 건 고작 1990년대 말부터다.
마이클 콜린스가 영국 총독으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은 더블린 성과 독립 운동가들을 가두었던 킬마이넘 감옥을 돌아보며 남다른 감상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2016년 8월 말부터 2017년 3월 초까지 약 6개월 머물렀을 뿐인데 소소한 나의 이야기들이 도시 곳곳에 쌓였다. 바람이 많이 불어 비가 와도 우산 쓰길 포기하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녔던 거리, 파란 하늘이 나타날 때면 기분이 좋아져 산책삼아 걸었던 운하 그리고 그 끝에 있던 카페 3fe, 무료라 며칠에 걸쳐 천천히 둘러본 더블린의 미술관과 박물관, 다양성 영화를 상영해 찾아갔던 영화관과 매주 수요일이면 찾아갔던 집 근처 영화관(수요일엔 영화 할인!) 등. 매일매일 도시 모습들을 한 조각씩 소화해가며 천천히 둘러보았는데도 떠날 때 아쉬움이 남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더블린의 봄과 여름이 궁금해졌다.
언제쯤 이 도시에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
-마이클 콜린스 (1996)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06)
-원스 (2006)
-헝거 (2008)
-섀도우 댄서 (2012)
-프로포즈 데이 (2010)
-싱스트리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