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것의 추억(1)
이번 러시아 여행에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방문했다. 마음 같아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차로 이동해보고 싶었지만 돈보다 시간이 더 귀한 직장인이라 비행기를 택했다. 짧지만 교외 지역을 여행하면서 기차를 타볼 기회가 있었다. 자유여행이나 버스, 지하철, 택시 등도 두루 이용했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에선 ‘탈 것’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불친절한 스튜어디스 vs. 시끄러운 중국인 관광객
가장 처음 이용한 건 비행기다.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넘어가야 해 러시아 국적기 ‘아에로폴로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찾아보니 불친절하다는 평이 가득. 승무원들의 기내 서비스가 친절하지 않은 건 괜찮은데 수하물 분실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는 건 마음에 걸렸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한국 항공사들처럼 해결해주지 않을 것 같아 여행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신경이 쓰였다.
모스크바에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뛰다시피 비행기가 빠져나왔다. 여행 전 한국에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자국민에게 여행을 자제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혹여 러시아 방역 당국이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철저히 조사하느라 시간을 뺏겨 환승에 늦진 않을지 신경이 곤두섰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표지판을 따라가다가도 길을 몇 번이나 잃었다. 영어가 키릴문자와 섞여 영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한국인이라 특별히 더 살펴보는 건 없었다. 국내선으로 이동해 또 다시 짐을 검사하는 과정에선 살짝 움찔했다. 엑스레이 검색대에 가방을 넣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공항 직원이 날 부르더니 화면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당연한 듯 러시아말로) 순간 나조차 ‘뭐지?’싶었지만 이내 카메라 필름임이 생각났다. 나는 영어로 대답했고 그가 고개를 갸웃하기에 사진을 찍는 포즈를 취하며 절대 이상한 물건이 아님을 각인시켰다.
비행기에선 승무원들의 불친절(?)을 맛보기도 전에 기절해 잠이 들었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했는지 푹신한 기내 의자라 몸을 자꾸 끌어 당겼다. (심지어 사진 한 장 찍은 에 없다)자다 중간에 깨보니 샌드위치가 손에 들려 있어 당황했다. 맛이 없다는 평이 많아 그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잠에 취해 궁금증은 해결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지 승무원들이 과도하게 친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승객들이 예의를 지켜야 할 것 같아. 가끔 ‘어글리 차이니즈(Ugly Chinese)’ 기사를 볼 때면 어느 나라나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데 저렇게까지 기사화할 일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들의 진면목을 목격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사이에 친구와 따로 앉게 됐는데 친구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며 한 시간 여를 이동했다. 옆 사람과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볼륨을 높여 동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내 옆자리 사람은 내 자리 앞에 비치된 책자들을 마구 뒤적였다. 설핏 잠들었던 나는 기척에 눈을 떴다 손이 내 앞에 와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내가 만난 그 몇몇 사람들만 그랬을 거라 믿는다.
카리스마 안내원이 있는 버스
어딜 가든 버스는 지하철보다 긴장되는 교통수단이다. 안내 방송이 현지어로만 나오기 때문에 언제 내려야 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어찌어찌 찾아간다 해도 가이드북엔 가는 법만 나오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막막해진다. 그래도 버스는 동네 구경을 하며 여행하기에 좋은 수단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러시아의 버스는 TV에서만 보던 옛날 한국의 버스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시설이 후지단건 아니다. 버스 차장 할머니가 새로웠다. 내가 탄 버스의 버스차장은 보통 중년 이상의 여성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버스에 올랐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요금통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빈자리에 가서 앉으면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민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버스비는 28루블. (빨리 내기 위해)손에 꼭 쥐고 있던 버스비를 내밀면 차장 할머니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전대에서 표 뭉치를 꺼내 한 장을 찢어서 건네곤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
+) 교외지역에서 탄 버스는 봉고였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갔기에 탈 수 있는 버스였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봉고차량 같은데 가는 도중 역까지 가는 현지인들이 계속 탔다. 큰 개를 데리고 탄 손님도 있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사랑방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
<비포 선라이즈>는 뭇 여행자들에게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영화다. 영화에서처럼 기차에서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났다는 주변 사람은 보지 못했고 첫 눈에 반한다는 달콤한 얘기도 믿지 않지만, 여행지에선 왠지 마음이 말랑해지면서 ‘혹시’란 생각이 슬그머니 마음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여름궁전, 파블롭스크궁전을 구경하기 위해 찾은 기차역. 로맨틱한 마음과는 반대로 날도 춥고 역사도 겨울느낌이 나게 휑했다. 기차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의 화려한 건물, 활기찬 사람들과 달리 정적이었다. 가이드로부터 교외지역은 도시보다 실업률이 높아 알콜중독문제가 심각해 오후 10시 이후엔 술 판매를 금지한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배경이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기차에 내려 밖으로 가니 파블롭스크가 기다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지나온 기찻길은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깔린 곳이다. 역 앞에선 황실 사냥터가 있던 이곳에 초대받은 귀족들을 위한 연회가 자주 열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