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떠난다#3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

by Zak

이상하게 꽃을 사는 게 부끄럽다. 정확히는 꽃을 들고 다니는 것이 어색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기 위해 조심스럽게 꽃을 들고 가는 사람이나 받은 꽃을 소중히 안고 가는 이를 보면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내 손에 꽃다발이 들려있는 걸 상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꽃 선물을 준대도 손을 내저을 판이니 스스로 꽃을 사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몇 년 전 봄날. 서촌 산책 중 미니 꽃다발을 산적이 있다. 꽃가게 앞에 진열된 미니 꽃다발을 보자마자 봄내음이 확 느껴졌다. 가게 앞에서 사진만 연신 찍다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 다발을 부탁했다. 50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오후 내내 그걸 들고 다니는데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꽃다발을 들고 들어간 가게 주인도 그 후에 만난 친구도 “진짜 봄인 것 같다”며 함께 꽃을 즐겼다. 이래서 사람들이 꽃을 사는구나.


러시아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현지인 가이드 말에 의하면 러시아인들은 식탁을 꽃으로 장식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공항과 지하철에선 꽃을 파는 자판기도 찾아볼 수 있었다. 내게 러시아의 연관검색어는 (근육질) 푸틴, 무기, 공산당, 매서운 겨울 등이다. 차갑고 딱딱한 단어만 연상되기 때문에 ‘꽃’은 영 안 어울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러시아는 대문호와 위대한 음악가 등 거장들을 배출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다.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꽃은 꼭 맞는 옷 같다.



거리를 걸으며 꽃을 들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시장 앞에서 채소 판매상 옆 꽃 노점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꽃을 보며 ‘돈 아깝다’고 느끼는지 ‘아름답다’고 바라보는지는 마음의 여유 정도를 가름하는 기준인 것 같기도 하다.



여담. 에르미타주를 둘러보다 방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솥단지(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웬 솥단지가 여기있나 싶어 들여다보고 있는데 가이드가 ‘꽃병’이라고 설명했다. 전쟁 당시 각종 보물들을 다 옮겼는데 이것만은 무거워 도저히 옮길 수가 없었다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궁을 떠났지만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꽃병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곳을 점령한 적들 역시 무거워 손을 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 꽃병을 채우려면 도대체 꽃이 얼마나 필요했던 걸까. 꽃은 어떻게 꽂았을까. 쓸데없는 궁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