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떠난다#4_(1)

문화·예술의 도시_푸시킨과 도스토예프스키

by Zak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고작 이 한 구절을 알면서 그동안 푸시킨에 대해 아는 척을 해왔다. 누군가 저 구절을 읊으면 “아 푸시킨 시?”라고 했고, 푸시킨에 대해 언급하면 저 시구를 들먹이며 마치 푸시킨에 대해 아는 듯 행세했다.


러시아에 다녀온 지금, 푸시킨의 작품읽진 않았지만 이젠 그를 좀 안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곳, 비극이 일어나기 전 레모네이드를 마셨던 카페 등에 가서 그의 흔적을 밟았기 때문에.


푸시킨은 러시아의 국민 시인으로 불린다. 현지인 가이드는 “러시아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푸시킨 시를 30편쯤 외워한다”며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사랑받는 시인이지만 (사실 가이드는 젊은 사람들은 푸시킨을 안좋아한다고 했다. 원래 문학작품을 공부로 접하면 그 아름다움과 의미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당대에도 인기가 많았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황제가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키는 작았지만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글재주가 있었던 푸시킨은 사교계에서 인기가 많았다. 1831년 그는 절세미녀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에 성공했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프랑스군 출신 황실 장교 단테스와 아내의 염문이 퍼지자 그는 아내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결투를 신청했다. 1837년 결투에서 그는 배에 총을 맞고 신음하다 사흘째 되는 날 눈을 감았다. 결투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의 집 주변에는 2만~3만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그의 집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이카 강변

에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입장해야 하는데, 들으면서 집안 구석구석 거닐다보면 그의 삶에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간 느낌이다. 특히 생의 마지막 순간을 라디오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소개한다. 층계 사이 작은 문. 오디오 가이드는 그곳이 푸시킨이 결투를 하러 뛰쳐나간 문이라고 설명했다. 나갈 때와 달리 그는 다시 그 문을 통해 걸어 들어오지 못했다. 서재(였던 것으로 기억)로 옮겨진 그는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책상 위 시계는 그가 세상을 떠난 시간에 맞춰져 있다.

결투 전 떨리는 마음으로 레모네이드를 마셨던 문학카페. 푸시킨이 당대 문학인들과 자주 모여 토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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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껏 치장한 중년의 여인이 나와 갑자기 뭔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정도의 짧은 인사인줄 알았는데 이야기가 끝날 기미 없이 이어졌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 상상력을 동원해봤다. 할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문학카페 주인으로서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은 푸시킨 결투 당시의 이야기를 마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실감나게 들려주고 있는 거라고.



모스크바에서도 그의 흔적은 이어졌다. 곳곳에 푸시킨 동상이 있다. 아르바트 거리엔 갓 결혼한 푸시킨 부부가 살았던 집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길 건너엔 푸시킨과 그의 아내 나탈랴의 동상이 서있다.



아르바트 거리에 발을 디디긴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둘러보질 못했다. 모스크바엔 구경거리가 많다. 스쳐지나갈 곳이 아니다.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다. 넵스키 대로 주변엔 수백년 된 건물들이 즐비해있어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걸었던 길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읽은 이 책은 계속 러시아를 떠오르게 했다. 책 속에 나오는 ‘넵스키’ ‘센나야 시장’ ‘네바강’ ‘루블’ 등의 단어를 볼 때마다 고작 일주일 다녀온 러시아가 그리워졌다.


박물관 입구. 가이드북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다 겨우 찾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집은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 항상 생활고에 시달렸고 사망하기 사흘 전까지도 4000루블을 선불로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이 집에서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을 집필했고 숨을 거두었다.



+) 전시장 곳곳엔 안내 혹은 감시를 위해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