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떠난다#4_(2)

문화·예술의 도시_발레와 음악

by Zak

#어쨌든 볼쇼이잖아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게 만드는 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첫인상, 첫 경험은 그래서 중요하다.


초등학교 4학년 당시 급식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식판에 받은 걸 하나도 남기지 못하게 하셨다. 11살 아이들에겐 배식도 놀이였다. 친구가 먹고 싶다 애원하면 조금주고 먹기 싫다고 하는 더 꾹꾹 눌러 담는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는 장난이 이어졌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범인은 무.말.랭.이. 그날 반찬으로 나온 무말랭이를 많은 아이들이 먹지 못했다. 식판에 무말랭이를 남긴 채 식판검사를 받으러 간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남은 음식을 입에 넣어야만 했다. 억지로 먹은 아이들 중 일부가 체하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날 이후 무말랭이 무침은 한동안 젓가락도 대지 않는 음식이 됐다.


발레로 유명한 러시아에 가서 발레 공연을 보는 건 당연하지만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발레공연을 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전혀 없어 가서 졸다만 올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고민이었다. 함께 간 친구는 조심스럽게 발레공연을 보자고 제안했다. 한국에서라면 미동도 하지 않았겠지만 ‘러시아 볼쇼이 발레’란 이름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앞으로 발레를 보게 될지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될지 중대한 순간이 다가왔다. 과연 발레가 내게 또 하나의 무말랭이가 될 것인가..





볼쇼이에서 본 공연은 <라 실피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세계 5대 발레단 가운데 하나인 마린스키 발레단이 있지만 그곳에 있을 때 시간이 맞지 않아 모스크바에서 볼쇼이 발레단을 찾았다. 가기 전 작품의 줄거리와 배경 지식을 속성으로 익히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성했다. (호텔에 전자티켓을 두고 오는 바람에 긴장했지만 어찌어찌 통과되었다)




평일 저녁에도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




두근두근





중간 쉬는 시간. 옷을 차려입고 공연에 온 꼬마아가씨들



<라 실피드>는 낭만주의를 연 작품이다. 실피드는 공기의 요정을 뜻하는 프랑스 말인데, 가벼운 움직임을 위해 발끝을 완전히 세워 춤을 추는 ‘뽀앵트(pointe)’ 기법이 도입된 첫 작품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지금과 같은 토슈즈도 만들어졌다. 종아리까지 오는 긴 발레리나의 스커트 ‘로맨틱 튀튀’도 이 작품에서 첫 선을 보였다.


몸의 언어를 오롯이 깨닫진 못했지만 줄거리를 익히고 간 덕에 흐름은 놓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다. 공연을 본 나는 그날 이러한 감상평을 적었다. 볼쇼이라는 이름이 절로 박수를 치게 한다.






#버스킹도 남다른 예술의 나라


붉은 광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역 출구.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중 익숙한 음악에 곁눈질을 시작했다. 첼로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홍대에서도 버스킹을 자주 봤으나 그땐 친구와의 대화를 방해하는 존재 또는 통행을 가로막는 방해물 정도로만 여겨 빠르게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여기선 그들의 연주에 발이 묶였다. 한 구석에 오도카니 서서 연주가 끝날 때까지 감상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지갑 속 동전을 탈탈 털어 악기 상자에 넣고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해본 일이 참 많다.










#차이콥스키의 영감은 얻을 수 없었지만


차이콥스키는 노보데비치 수녀원 뒤편 공원 호숫가에서 <백조의 호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여행 전 이곳의 사진을 보고 수면에 비친 수녀원의 모습이 아름다워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함께 한 친구에게 조류공포증이 있었는데 새를 피해 이동할 곳은ㅅ 찾기 힘들 정도로 새가 많았다. 분명 산책길이었는데 어느새 고행길이 되었다. 어찌어찌 끝까지 도달했을 때, 그가 얻었다는 영감은 못 얻었지만 안도감은 얻을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노보데비치 수녀원은 가장 아름다운 러시아 정교회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방문했을 당시 지난해 초 발생한 화재로 종탑이 공사 중이었다. 안에는 교회가 있어 실제 예배를 보러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러시아 정교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신자들의 행동을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러시아 정교는 예배를 서서 드린다. 여자들은 긴 치마를 입고 예배에 참석한다. 머리카락도 가리는 것 같다.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성자들의 그림에 입을 맞춘다. (검색해보니 위생 상 이유로 요즘에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지만 목격할 수 있었다. 함께 예배 드리러온 듯 한 서너 사람이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입구 주위에 있는 그림들에 줄을 서서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수녀원 옆에는 묘지가 있다. 사실 수녀원을 찾아가려다 이곳을 먼저 들어오게 됐는데 수녀원과 연결돼있는 줄 알고 길을 찾아 이곳저곳 헤맸으나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입구로 되돌아 나와야 했다. 본의 아니게 헤매면서 유명인들의 묘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엔 옐친 전 대통령, 안톤 체호프, 니콜라이 고골 등이 잠들어있다. 우리나라 무덤과 다르게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찾는 이가 없는 듯 쓸쓸하게 방치된 곳도 있었지만 노부부가 묘지 주변에 꽃을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는 곳도 있었다. 누구일까. 엄마? 아빠? 아니면 먼저 세상을 떠나 가슴에 묻은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