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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Aug 29. 2016

자발적 실업자

흔한 퇴사 일기

부서를 옮긴 부장이 팀원들에게 저녁을 사는 자리였다. 개인적 문제도 없었고 일로 누군가 나를 타박하지도 않았다. 편하게 서로 근황을 묻는 말들이 오갔다. 웃으며 대화에 동참했고 특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참을 수 없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혼자 있게 되자 제어장치를 잃은 눈물샘은 도통 멈출 줄을 몰랐다. 한참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침 화장실에 왔던 후배와 마주친 뒤에야 조금 마음을 추스르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문을 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돌아켜보면 '마음의 둑'이 무너진 건 그때였던 것 같다. 하고 있는 일이 영 맞는 옷 같지 않아 오랜동안 고민했다. 일을 하는 동안 고비를 맞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한 없이 바닥으로 치닫다가 또 치고 올라와 괜찮아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동시에 이 일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또 내게도 그렇게 하고 싶어 안달 나는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중학교 때부터 PD가 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결국 원하던 길로 가지 못했다. 방향을 틀어 2013년 현재 회사에 입사했다. 힘든 수습 기간 동안 "그만둘까" 수만번 되뇌면서도 버틴 건 '이게 힘들어 도망치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란 스스로의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갖 푸념을 쏟아놓으며 주변 사람들을 부단히 괴롭힌 덕에 무사히 6개월을 마칠 수 있었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수면 시간 등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자 '이 일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만하면 (맘 편히 갈 수 있는 유일한 휴가인) 여름 휴가를 갈 수 있었고, 설과 추석 연휴가 왔다. 하지만 휴가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결정적인 것은 지난해 K 공채 탈락이었다. 입사 후에도 방송사 공채가 뜰 때마다 지원서를 냈다. 스스로 정한 기한은 서른이었고 그때까진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했다. 언제까지고 PD란 허상과도 같은 꿈에만 매달릴 순 없었다. 결국 낙방한 뒤 친구들에겐 담담하게 "이제 PD 준비 안하려고"라고 말했지만 속마음까지 그러진 못했다. 무언가 노력해 성취하는 법에 대해선 배워왔지만 '놓는 법'은 익히질 못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은가.


  

언젠가 당직을 서면서 찍은 사진. 업의 특성상 '내 자리'란 것이 없어 퇴사를 할 때 정리하는 기분이 덜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내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일본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그냥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하자면 정말로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런 생활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먼 북소리> 머리말 중, 무라카미 하루키



회사를 다니며 이직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 몇몇 선배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와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선 어떤 결정을 내려도 지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로 했다. 대학 때 가지 못한 어학연수와 세계여행으로 마음을 굳혔다. 매번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희망사항'이었다. 지금이 결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 늦으면 영영 할 수 없는 일이 될 것 같았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놓는 것을 두려워하느라 내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한 채 후회만 할 순 없었다.



야근을 마치고 막차타러 가는 길에 돌아다 본 회사.



마지막은 생각처럼 멋지지 않았다. 가끔 일하기 싫어질 때면 '퇴사하는 순간'을 떠올려보곤 했다. 가장 바쁜 시간에 이제 모든 게 나와 상관 없다는 듯 쿨하게 사표와 노트북 신분증을 반납하는 모습. 하지만 현실을 눈물바다였다. "그만두려고 합니다"란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여러 선배들을 만나 퇴사 이유를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가장 솔직하게 내 생각과 상태를 입 밖에 내봤다. 선배들에게 얘기했다 괜한 책만 잡힐까 싶어 4년간 회사를 다니며 고민들을 내어놓은 적이 없었다. 시원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과 이제는 관계 없는 사람이 되겠구나. 못 보고 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서운해졌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떠나는 내게 선배들은 격려의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퇴사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만류 역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을 알기에 감사했다. 소식을 듣고는 미처 먼저 인사드리지 못한 선배들이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한 선배는 같이 일한 적이 없어 특별히 친분이 없음에도 더블린에 친구가 있으니 필요하면 연락해보라고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회사에서 재밌기보단 스트레스받고 짜증낸 일이 더 많았지만 즐거웠던 기억만 가져가려고 한다.




2016년 8월 1일부터 공식적인 실업자가 됐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6개월간 어학원에 다니고 나머지 6개월은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이집트-케냐-요르단-이스라엘-터키-그리스, 남미-쿠바-뉴욕 등을 두루 밟을 생각이다.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게으른 한해를 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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