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k Sep 10. 2016

미안한 마음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친 마음들

그들은 생각했다. 딸과 아들이 아직 독립하진 않았지만 제 밥 벌이를 하며 살고 있으니 이제 좀 여유를 가지고 살아도 되겠다고. 네 식구 먹고사는 데 부족한 월급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겐 늘 불안감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아이들 학교도 졸업 못 시키는 건 아닐까, 혹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걸 시켜주지 못해 나중에 원망을 듣진 않을까. 그들이 사고 싶었던 옷과 가방, 떠나고 싶은 여행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어딘가에 깊이 묻어두어야 했다. 그래도 이렇게 잘 살아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들과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부모 손을 벌려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번 돈으로 어떻게든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기에 그들은 고개만 끄덕여줬다. 혹 실패하더라도 젊어서 한 경험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좋은 양분이 될 거라고 응원했다.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걱정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진짜 잘하고 있는 거냐”라고 아들에게 말을 거는 대신 ‘그분’께 하고픈 말을 쏟아냈다. 


이번엔 딸이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일랜드로 가겠다고 했다. 이후에 계획도 없었다. 무작정 떠나고만 싶다고 했다. 훗날은 나중에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부쩍 늘어난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을 다니며 ‘벌써 내 딸도 나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느끼고 있었다. 결혼을 재촉하진 않았지만 내심 짝을 데려오길 기다리고 있던 차에 딸은 결혼 대신 아일랜드를 택했다. 남의 자식들은 앞으로 가는데 딸만 자꾸 뒤로 가려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말릴 순 없었다. 딸의 인생이었다. 더 이상 부모가 책임져줄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나이였다. 서운한 마음은 “그만둔 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란 한 마디에 눌러 담았다. 신이 나서 그럴 리 없을 거라 단언하는 딸을 보며 또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 “우리 아이들은 누굴 닮아서 그렇지? 당신도 나도 그렇지 않은 거 같은데…”라고 운을 뗐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것이 큰 욕심인가’ ‘이제 자식 걱정은 좀 내려놓고 살 때도 되지 않았나’ 자식 잘되기만 바라며 살아온 삶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 같아 허무함마저 느껴졌다. 커피를 다 마실 즈음 그들은 원래 자신들도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가난이 싫어, 가난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아등바등 살다 보니 좋아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도 잊고 살았던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자식들 덕분에 그들도 몰랐던 본인들의 진짜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그들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지한 프러포즈는 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할 때면 “결혼하자”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꺼냈다. 항상 답은 “4년 후”였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외국에 가서 살아보고도 싶고 1년간 세계일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볼리비아 소금 사막, 모로코 페스, 케냐 마사이마라 등 그에겐 생소한 곳들을 열거하며 언젠가 꼭 다 가볼 거라고 했다.

 

어느 날 그녀는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고 수화기 너머로 전했다. 허투루 말을 뱉는 사람은 아니지만 떠나고 싶다는 말은 모두가 그렇듯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과 같은 거라고 여겨왔다. ‘언젠가’가 실제로 다가올 수 있는 때임을 예상치 못했다. 날벼락이었다. 대학생이었다면 여자친구가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가는 걸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30대 직장인인 그에겐 여자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떠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문항이었다. 

 

답을 찾고 싶었다.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 친구가 돌아와 결혼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무작정 기다리는 건 나이를 고려했을 때 무모한 짓이란 조언이 쏟아졌다. 그는 흔들렸다. 내년이면 서른셋. 빨리 결혼해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고 싶었다. 괜히 요즘 들어 부쩍 나이를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늘어난 새치도, 이제는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된 뱃살도 신경이 쓰였다. 주변 사람들은 쉽게 결혼하는 것 같은데 자신은 무엇이 부족해 못하는 건지 답답했다.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녀가 좋은 사람이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일 년은 짧은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이만큼 좋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깟 일 년은 자기 자신을 채우는 시간으로 알차게 보내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끝도 없이 뻗어가는 부정적인 가정의 가지들을 쳐내고 흩어진 마음의 조각을 모아보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그녀가 가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그녀가 한없이 야속해졌다. 이 ‘위기’를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단 한 번도 “기다려달라” “갔다 와서 결혼하자”말하지 않는 그녀 때문에 마음은 더 자주 흔들렸다. 그래도 차마 “헤어지자”고는 할 수 없었다. 삼켜지지 않는 울분을 삼켜보려 몇 번이고 시도했다. 괜찮아져야만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일을 하고 있다가도 그녀와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상대방은 떠나는 것도 일 년 동안 보지 못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 보여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진짜 자신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붙잡는 데도 갈 수 있을까. 그는 그녀의 마음마저 의심스러워졌다. 


그는 두려웠다. 그녀가 다른 사람이 좋아졌다고 할까 봐 혹 지금 모습과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올까 봐 불안했다. 자신의 마음도 믿을 수가 없었다. 외로움에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게 될까 무서웠다. 차라리 일이 바빠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길 바랐다. 


혼자가 된 첫 주말. 그는 친구들을 만났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녀와 실시간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던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졌다. 보이스톡은 연결되지 않았다. 장소를 바꿔가며 재차 걸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파리에서 더블린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뒤에는 메시지에 답마저 없어졌다. 비행기가 뜬다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지만 그는 계속 보이스톡 버튼을 눌렀다. 술이 깬 그는 전화 목록에 가득한 그녀 이름을 발견했다. 받을 수 없는 전화인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고마운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