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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Sep 13. 2016

시작은 파리

“곧 파리에 도착합니다. 현지시간은 오후 6시 30분.기온은 32도입니다”


찌는듯한 더위를 피해 온 파리에서 또 다시 뜨거운 열기를 만났다. 서늘한 바람을 기대하며 들고 왔던 트렌치코트는 바로 짐이 됐다. 시작부터 한숨이 나왔다. 머무는 한주간 파리는 계속 32~35도. 가이드북에서 봤던 한 줄이 떠올랐다. ‘이상기후로 8월에 가끔 더울 때가 있다.’


내겐 지켜야 할 1년치 짐이 있었다. 백팩과 숄더백 그리고 21kg짜리 캐리어를 소매치기들로부터 사수해야 했다. 덥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많아질 때면 가방을 좀더 몸 쪽으로 바짝 붙였다. 초행길이 아닌 것처럼 두리번거리지 않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누가 채갈까 싶어 휴대전화는 가방 깊숙이 넣어 버렸다. 숙소로 가는 길은 비행기에서 여러 번 확인해뒀다. 프랑스어를 읽을 수 없는 탓에 역 이름은 그림처럼 입력해 머릿속에 넣었다. 계단에도 굴하지 않았다. 땀이 흘렀지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지하철을 상상하며 짐을 번쩍 들어 옮겼다. 


바람과 달리 사람들이 들어찬 객차 안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땀이 절로 흘러내렸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건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마도 몸에 해로운) 터널 내 먼지가 실린 바람뿐이었다. 이리저리 굴러가려는 캐리어를 사수하느라 땀조차 닦을 수 없었다. 손으론 가방들을 꽉 쥐고 눈은 전광판에 고정했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까봐 신경이 곤두섰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공포의 북역을 지나 숙소가 위치한 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하철 출구에도 어김없이 계단이 있었다. 크게 한번 숨을 고르고 캐리어를 드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짐을 잡아채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가? 다 와서 이렇게 당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좀 더 손에 힘을 줬다. 뒤를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가방 뒤쪽을 들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지자 아주머니는 “조금만 천천히 가자”며 웃었다. 


계단이 끝나자 가방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제너레이터 호스텔 가니?”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위치를 알려주며 호스텔 앞까지 함께 가주었다. 이 동네에 산다는 그녀는 “어쩌면 머무는 동안 지나가도 또 볼 수도 있겠다”면서 “즐거운 여행되라”고 인사를 건넸다.  


돌이켜보면 파리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본 얘기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정보를 찾아볼수록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공항에서 내려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소매치기 대비였다. 지갑은 스프링줄을 달아 가방에 걸었고, 숄더백 지퍼 부분에는 옷핀을 찔러 넣어 열리지 않도록 했다. 들고 있던 노트북은 캐리어 속에 넣었다.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심해서 나쁠 거야 없지만 소매치기 걱정에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긴장했다. 스쳐간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느라 그들의 모습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여행 막바지가 되어 조금 익숙해진 뒤에야 어디든 털썩 앉아 햇살을 즐기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노천카페도 어느 정도는 더위를 식혀가며 즐길 수 있게 됐다. 


루브르 박물관 창밖으로 분수에 앉아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박물관을 나오자마자 나도 바로 그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안 더운데 왜 나만 덥지?'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두려움으로 시작한 파리 여행이었지만 파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더위만 아니었더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전혀 불평하지 않았을 것 같다. 서있기만 해도 땀이 흘러 더 이상은 못 걷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리가 아름다워 걷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멋진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카메라를 들었다가 흐르는 땀에 “도저히 안되겠다”며 포기하고 돌아서지만 또 다시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곳이 파리였다. 


걷게 만드는 파리 골목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순간 이동을 한 듯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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