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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Oct 02. 2016

'왜 아일랜드냐' 묻는 말들에 대하여

찬바람 불던 토요일의 더블린

8월의 더블린은 찬바람으로 나를 맞이했다. 파리에서 더위에 지친 터라 바람이 싫지 않았다. 앞으로 지낼 곳이라 생각하니 처음 오는 곳인데도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러 간 곳에서 만난 버스 회사 직원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주소를 물으며 타야 할 버스 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버스에서 내릴 땐 23kg 캐리어를 짐칸에서 내리려 낑낑대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도와줄까?"하며 다가왔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친절함'이 매력이라던 사람들이 이야기가 진짜인 것 같아 더블린이 단숨에 좋아졌다.


떠나기 전 ‘왜 아일랜드냐’는질문을 많이 받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하고 여행을 다닐 계획이라는 얘기에 모두들 마지막엔 "근데 왜 아일랜드야?"란 의문을 던졌다. 질문은 아일랜드에서도 이어졌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영어 공부를 하려면 런던이나 미국을 가지 왜 더블린으로 왔어?"라고 물었다.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아야 했다. 그래야 이 모든 일이 좀 더 의미 있어 보일 것 같았다. 처음엔 얼버무리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몇 번 그러고 나니 답변이 그럴싸해졌다. '미국이나 호주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니 가고 싶지 않고, 여행이 목적인 만큼 유럽여행을 하기 좋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런던은 비싸니 더블린을 택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여줬다. (하지만 실제 더블린 물가가 예상했던 것보다 비싸 고전 중이다)



처음에 Q가 뭔지 몰라 당황했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내 머릿속엔 line이란 단어만 입력돼있었다.


올 상반기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에 지원했다. 또다시 '왜?'란 질문이 따라붙을 테지만 역시 알 수 없다. 답답함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와 올해는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직을 하든 대학원을 가든 세계일주를 가든 아니면 마음잡고 현재 회사에 열심히 다니든 어느 쪽으로라도 발을 내딛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 신청은 하나의 '시험'이었다. 아일랜드는 상하반기 각각 200명씩 1년에 총 400명에게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준다. 여기에 든다면 당장 떠나라는 계시로 알고 미련 없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대 1을 훌쩍 뛰어넘은 경쟁률을 뚫지 못했다. 발표를 기다리면서 아일랜드에 대해 계속 알아봤다.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아일랜드 워홀러들의 글들도 하나하나 꼼꼼히 봤다. 어느새 아일랜드는 내가 가야 할 곳이 되어 있었다. '되면 무조건 가겠다'라고 수없이 되새기면서 반대 경우에 대해선 고민해보지 않았다. 지원하는 순간 이미 '가지 않는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Pub crawl의 성지인 템플바 스퀘어의 중심인 '템플바'


또 사람들은 묻는다. '1년 뒤 돌아와서 무엇을 할 거니?'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정했니?' 질문 의도와 상관없이 내겐 지금 당장 생각해둬야 한다고 채근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럴 때면 한국에 두고 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조급증'이 나를 괴롭힌다.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게 된다. 조금만 느슨해지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결국 공간만 달라졌을 뿐 결국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이 되는 셈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왜 아일랜드냐'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답이 아닌 진짜 의미를 가진 답을 찾기에 한 달이란 시간은 아직 부족하다.


더블린의 홀수와 짝수를 가르는 리피강.


집과 학원을 오갈 때 늘 지나가는 스티븐스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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