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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Sep 29. 2016

Craft와 휴가철 파리

몇 년 전 대한민국이 ‘세계 7대 자연경관’ 때문에 떠들썩했다. 제주도를 명단에 올리기 위해 대국민 투표 독려 캠페인이 벌어졌다. 덕분에 제주도는 베트남 하롱베이, 브라질∙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축배를 들기도 전에 잡음이 나왔다. 주관사인 ‘뉴 세븐 원더스’의 실체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공신력 없는 기관이 수여한 타이틀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으며, 공을 들인 만큼의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줄 것인지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결국 ‘세계 7대 자연경관 프로젝트’는 ‘대국민 사기극’이란 불명예스러운 타이틀만 안게 됐다. 제주도는 세계 7대 경관에 선정되기 위해 200여 억 원의 투표 전화비와 사업예산 32억 원 등 약 300억 원을 썼다. 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2014년부터 세계 7대 자연경관 활용계획이 전면 중단됐다고 한다.  


세금을 신중하게 쓰지 못한 점은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제주도가 타이틀에 목을 맨 상황은 충분히 이해된다.  ‘OO 선정 세계에서 가장 XX한 10곳’ 등의 문구는 여행자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인터넷에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여러 리스트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카페 25곳(25 Coffee shops around the world you have to see before you die)’도 그 중 하나다.


파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리스트를 알게 됐다. 제주도의 ‘세계 자연 7대 경관’ 선정 과정엔 코웃음 쳤지만 여행자가 되고 보니 명단에 절로 눈길이 갔다. 리스트에 있는 파리의 Craft 카페는 숙소 근처에 있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파리였다. 웬만한 가게들은 5시 전에 문을 닫았다. 카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영업시간은 아직 밝은 유럽의 여름밤을 만끽하려는 여행자에겐 가혹하기만 했다. 아침엔 긴 줄을 피하기 위해 노트르담, 개선문 등으로 서둘러 이동해야 했기에 도저히 짬이 나질 않았다.


떠나기 전날 아침. 일부러 일정을 늦춰 잡고 아침식사를 즐길 겸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웬걸 카페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프랑스어를 모르나 느낌 상 ‘휴가’를 떠났다고 쓰여있는 듯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에서 인파에 휩쓸리다 보니 파리의 ‘바캉스’를 잊고 있었다. 그 후 길을 걸을 때면 굳게 닫힌 상점 앞에 붙어 있는 쪽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Craft를 못 간 대신 가려던 루브르 박물관 근처 카페에도 주인대신 긴 휴가를 알리는 메시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한국의 회사원이었던 내게 주어진 여름휴가는 일주일 남짓이었다. 그나마도 일년 중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유일한 휴가였다. 업의 특성상 공휴일에도 대부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징검다리 휴가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지난해 여름휴가로 러시아를 가면서 지척에 있는 핀란드와 발트 3국이 눈에 밟혔지만 길게 휴가를 쓸 수 없는 탓에 돌아서야만 했다.


파리에서 더블린에 돌아와 시티 워킹투어를 하면서 한 프랑스인을 만났다. 여름휴가로 유럽 전역을 여행하다 돌아가는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며칠 전 파리에서 마주했던 상황을 얘기하며 한국에 선 휴가를 쓰는 게 쉽지 않다고 얘기하자 그는 “프랑스에선 휴가가 무척 중요하다. 휴가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대화 중 가장 흥분한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공항으로 향하기 직전 들러 맛보았던 Craft의 라떼


휴가철을 알리는 센강 인공 모래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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