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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Oct 18. 2016

런던의 길고 긴 밤

금요일 오전 12시 30분의 베이커가

런던의 밤은 길었다. 가장 저렴한 항공편을 고르다 보니 늦은 밤, 히드로 공항이 아닌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하게 됐다. 라이언에어는 한 시간 연착까지 덤으로 안겨줬다. 내리자마자 정류장으로 마중 나오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가 없어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공중전화의 이질감과 친구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는 어색함에 우물거리다 “이제 출발한다”는 짧은 말만 남기고 버스에 올랐다. 


오전 12시 30분. 한 시간 만에 버스는 베이커가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빨리 목적지에 다다랐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선 낮에 이곳을 메웠을 관광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형광 주황색 조끼를 입은, 지하철 수리 회사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만이 정류장 주변에 모여있었다. 길 건너편엔 흥겨운 밤을 보낸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택시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다리는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이트 버스가 줄지어 지나갔지만 옥토퍼스 카드가 없어 탈 수 없었다. 드라마 <셜록>에서 봤던 검정 택시들이 유혹하듯 스쳐갔지만 친구가 혹여 기다리고 있을까 봐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친구가 숙소에서 기다리길 바라며. 


런던은 안전한 도시라는 여행자들의 후기가 사실일거라 자기 최면을 걸며 나선 길이지만, 골목길에 들어서면 사람의 인기척에 신경이 쓰였다. 수시로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불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다리가 뻐근하도록 부지런히 움직였다. 30여분 지나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하고 간 탓에 주변을 서너 바퀴 돈 뒤에야 호스텔을 찾을 수 있었다. 


호스텔 프런트엔 심드렁한 표정의 두 직원만이 앉아 있었다. 기대했던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빌리기 위해 말을 건네려는데 직원이 통화를 하면서 계속 “네 친구? 무슨 친구?”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혹은 귀찮다는 듯 말을 반복했다. ‘친구가 내 가 혹시 도착했는지 확인해달라고 전화를 걸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왔으면 전화 좀 주지.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번호도 알고 있었으면서. 밖에 엄청 추운데!” 반가움과 서운함과 약간의 짜증과 피곤함이 뒤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상황을 설명하느라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단 와. 와서 얘기하자.”


친구는 세 시간이나 정류장에서 날 기다렸다고 한다. 금방 만나 들어올 줄 알고 옷까지 얇게 입고 간 탓에 추위와 어둠 속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나는 왜 한 번 더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그냥 호스텔에서 만나기로 할 것을 왜 마중오라고 했을까. 버스를 이용 못해도 택시를 탈 수도 있었을 텐데. '휴대전화가 없다'는 초유의 사태에 지레 겁먹은 우리의 선택에 어이없어하며 한참 이야기하다 4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베이커 역 맞은편에 있는 셜록홈즈 박물관. 
이게 뭐라고. 보는 순간 설렌다.





런던의 둘째 날 밤은 친구의 여행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 유명한 ‘플랫아이언’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을 하러 근처 펍에 갔다. 대화를 나눌 만한 조용한 펍을 찾고 싶었지만 도통 갈만한 곳이 없었다. (더블린 시내에 넘쳐나는 펍들이 생각났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곳에 갔으나 들어간 지 한 시간쯤 지나 “Ladys”라고 직원이 친근하게 말을 걸더니 곧 문을 닫는다고 알려 왔다. 우리의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을 때였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 장소를 물색해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숙소로 돌아가 호스텔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알코올로 알딸딸하고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방으로 향했다. 다들 잠든 고요한 어둠 속에서 짐을 정리하고 씻기 위해 샤워 도구를 챙기고 있는데 요란한 화재 경보음이 귓가를 때렸다. 방안 사람들은 급히 일어나 불을 켜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passport”를 외쳤다. 나갈 생각이 없었던 나도 덩달아 짐가방을 꼭 쥐고 프런트로 나갔다. 샤워를 하다 뛰쳐나왔는지 수건을 두르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호스텔 직원은 별일 아니라고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만 시끄러운 알람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십여분 지나 알람이 잦아들자 사람들이 하나 둘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와 한몸이 되려는 순간, 방에 있던한 남자가 말했다. “너 체크아웃한 거 아니었어? 여기 다른 남자 애가 오늘 들어왔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잠시 뒤 핏줄이 선 눈과 ‘피곤함’이란 단어가 얼굴에 쓰여있는 듯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우리는 모두 같은 호수 같은 침대 번호가 적힌 카드키를 내밀며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미 두 시가 넘은 때였다. 다시 프런트로 내려갔다. 황당한 우리는 프런트 직원에게 당장 달려가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는 첫날과 같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단 저 사람들 체크인해줘야 하니까 앉아서 기다려”라고 말했다. 같이 온 남자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다른 직원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를 물으니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얘기했다. 그는 “오 흥분하지 마. 다른 방을 찾아서 배정해줄게”라고 말했다. 이어 “누가 옮길 거야? 누가 먼저 왔어?”라고 물었다. 우리 둘 다 옮기는 게 상관없다곤 했지만 그는 “내가 옮길게”라고 선뜻 말하지 않았다. 직원이 “여자 분이 원래 쓰던 방을 쓰고 네 방을 찾아줄게”라고 했지만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짐도 쌌고 전날 코골이 서라운딩에 잠을 못 이룬 터라 내가 옮기겠다고 말하고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그는 “미안”이라고 말했지만 진심보단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러고도 한참을 첫날처럼 소파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내내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직원은 미안했던지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나 봐. 이런 일은 처음이야”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무료로 조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다른 투숙객을 안내해주고 내 곁으로 온 또 다른 직원은 “그 남자 진짜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남자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다”라며 내게 방을 양보하지 않은 남자 흉을 봤다. 맞장구 쳐줄 힘도 없었다. 세 시가 넘어 침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플랫아이언. 2시간 기다린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빅벤



런던의 마지막 밤은 이스트엔드(East end)에서 보냈다. 타워 브릿지를 보고 ‘잭 더 리퍼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화이트채플 지역에서 엽기적인 살인을 벌이고 결국 잡히지 않았던 희대의 살인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섯 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들을 돌아보았다. 이곳의 어둠과 공기는 며칠간 돌아본 서쪽 런던의 모습과는 달랐다. 걷고 있는 길을 고작 백여 년 전 범인이 걸었다는 것,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잭 더 리퍼’가 범행 대상을 물색했을 것이란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졌다. (공항버스 타는 시간 때문에 중간에 빠져나와야 해 아쉬웠다)


1880년대 이곳은 이민자들의 터전이었다. 화려한 런던에서 ‘성공’을꿈꾸며 영국에 왔지만 그들에게 마련된 자리는 불빛이 드문드문 있고 오염 때문에 늘 짙은 안개가 깔려있는 이스트엔드였다. 그들이 바라보았을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강 건너와는 달랐다. 이곳은 살인자들에겐 사건을 벌이기 좋은 장소였다. 안개는 최적의 방패막이였다. 당시엔 안개 때문에 단 몇 걸음 앞에 있는 사람도 분간할 수 없었으니까.


잭 더 리퍼. 그가 표적으로 삼은 건 매춘부였다. 당시 매춘은 불법이 아니었다. 매춘은 여성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였다. 돈을 모으기보단 하룻밤 몸을 뉘일 곳을 찾기 위해 몸을 팔았다. 생존의 문제였다. 거리의 여자들은 집이 없었기 때문에 7~8겹씩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껴입고 다녔다. 섹스를 하는 것은 괜찮지만 야한 옷을 입고 유혹하는 것은 법에 어긋났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선택되길 기다리며 성당을 돌았다. 300여 명의 여성들이 매일 그곳을 하염없이 돌았다고 한다.


‘잭 더 리퍼’란 이름은 범인이 보낸 것으로 추정된 편지에서 스스로를 이같이 칭해 붙여진 별명이다. ‘잭’은 영국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이름이라 신문에 이름이 공개된 뒤 사람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이발사의 이름도 상점 주인 이름도 옆집 사람 이름도 ‘잭’이라 그들은 매일 ‘혹시 저 사람이?’란 의문을 달고 다녀야 했다. 


시티 워(The Roman&Medieval City Wall)
이스트엔드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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