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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Oct 20. 2016

코츠월드, 함께하는 즐거움

해외에 홀로 나와 있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눈 뜨자마자 비몽사몽간에 본 카톡에서 '밥은 잘 먹고 아픈 덴 없이 잘내고 있냐'는 메시지를 봤을 때, 오랜만에 손편지를 쓰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럽에 갈 일이 있으니 네가 있는 아일랜드로 가겠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


추석 연휴에 런던행을 택한 친구 V도 그랬다.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나를 생각해줬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우리 집에 가서 내게 필요한 물건들을 받아왔다. (필름만 챙기고 필름카메라를 두고 왔는데 친구 덕에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출발 전 휴대전화가 고장나 공기계를 받아와야 하게 돼 집에 한 번 더 다녀왔다. 그러고도 런던에서 또 뭔가 더 해줄 게 없을까 고민했다. 숙박을 책임질까 고든램지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밥을 사줄까 머리를 굴리던 V는 '코츠월드 여행'을 선물로 안겨줬다. "저 투어는 내가 응원의 명목으로 쏠게."




전날 설핏 잠이 듯 탓에 이른 새벽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칠 것 같지 않은 비였다. 숙소를 나와 투어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로 걸어가는 10여분 사이 신발까지 젖었다. 비가 올거란 일기예보에도 아일랜드에서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오다 새파란 하늘이 나타나길 기대했건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오는 데다 도로가 공사 중이라 차가 심하게 밀렸다. 반쯤 포기한 상태로 잠의 마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이 차의 속도가 달라졌다. 빼곡했던 건물들 대신 목초지가 나오고 어느새 하늘까지 맑게 갰다.





코츠월드는 과거 양모 산업을 위해 조성된 목초지다. 중간중간에 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가진 곳들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대중교통으론 돌아보기 힘들어 효율적인 여행을 위해 현지투어를 택했다. 차를 타고 서너 마을을 돌았는데, 차에선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가도 차 문을 열고 내리면 "와"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바로 기운을 회복해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V와는 (다시 들어간) 대학교 1학년 때 함께 홍콩으로 여행을 갔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비행기 값이 올라 그나마 가장 저렴한 때를 고른 것이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캐리어를 들고 학교까지 갈 수 없었다. 시험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엄마에게 열린 문 사이로 가방만 넘겨받아 급히 공항으로 향했던 기억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땐 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것들을 하러 금새 홍콩에 다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직까지 다시 홍콩에 가지 못했다. 또 V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얘기했었는데 한참이 흘러서야 그 약속이 이뤄졌다.


한동안 혼자 여행을 하며 제대로된 '내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남에게 카메라를 맡기기 찜찜하기도 하고, 사진을 부탁하고 맘에 들지 않아도 다시 찍어달라고 하기 뭐해 대충 '내가 여기 있었다'는 인증샷만 남기곤 했다. 간혹 괜찮게 나온 사진이 있어도 포즈는 한결같이 '브이'였다. '하나 둘 셋'의 외침과 함께 어색해진 표정은 덤.  


 친구와 여행을 한 덕분에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선물받을 수 있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저 곳에서 나는 저렇게 움직이고, 저런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구나' 나도 알아채지 못했던 여행지 속 나를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함께 여행해준 친구 V.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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