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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Dec 04. 2016

스페인 공항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

둔탁한 울림과 함께 비행기가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휴대전화부터 꺼내 들었다. 전원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나는 초조하게 전화기를 들고 시간만 계속 확인했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연착되진 않았지만 이미 두 시간이나 공항에서 기다렸을 P군(신문 나이론 P씨이나 본인 요청에 따라 P군으로 칭함)을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좌석벨트 사인이 꺼지자 마자 가방을 꺼내들고 내달렸다.


더블린을 떠나기 전 그에게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네가 나오는 출국장 앞에서 기다릴게'였다. 입국심사대 직원의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받고 나와 출국장 문 앞에 서니 긴장이 됐다. 그의 얼굴을 보면 가장 먼저 뭐라고 말해주지? 마주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매일 연락을 했으면서도 갑자기 처음 만나는 것처럼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한 발을 내딛자 문이 열렸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살폈지만 기다리겠다던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대신 한껏 기대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내 모습을 보고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혹 길이 엇갈린건가 싶어 공항 이곳 저곳을 훑고 다녔다. 그리고 다시 출국장으로 돌아갔을 때,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P군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앞에 계속 있다가 안 나오길래 출국장 맞는지 확인하러 잠깐 갔다왔는데... 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맞이하려고 했는데. 괜히 갔다왔어."


예상치 못하게 뒤에서 나타난 내게 P군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처럼 가방을 내팽겨치고 달려가 포옹하며 재회하는 만남은 없었다. 늘 그랬듯이 나는 뒤에서 놀래키는 장난으로 그를 맞이했다. 두 달 여만에 직접 보는 얼굴이었다.


기분이 묘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어제 만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서로 한국에서 봤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사이 미용실을 가지 못해 좀 더 길어진 머리와 열흘을 앓고도 떼어놓지 못한 채 달고 온 감기로 코맹맹이 소리가 나느 걸 빼고 나는 그대로였다. P군도 마찬가지였다. 뱃살을 빼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본 모습 그대로 뱃살을 데려왔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그는 뱃살 빼기에 돌입했지만 실패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채 나타나려 렌즈를 주문했지만 제 때 도착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급히 산 렌즈는 도수가 맞지 않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뱃살이 그대로라며 타박하긴 했지만 사실 그가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줘서 더 좋았다.




집으로


바르셀로나에서 헤어질 땐 내 비행기가 두 시간 더 늦게 출발했다. 그래봤자 내가 먼저 도착할테지만. P군은 언제 바르셀로나에 또 올지 모르니 시내에서 관광을 더 하다 더블린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시내에서 "안녕"하고 버스에 태워 보낼 순 없었다. 까딸루냐 광장에서 함께 공항버스를 탔다. 터미널이 달라 같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터미널 곳곳을 기웃거리고 의자에 잠시 앉아 있다 지체할 수 없을 때가 돼서야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P군은 말수가 줄었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괜히 나도 눈물이 났다. P군은 "너 원래 잘 안 울잖아"라며 핀잔을 줬다. 그가 들어가 보안검색대를 지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갈 때까지 밖에서 지켜보았다. 옆엔 출장가는 아빠를 배웅하러 나온 듯한 엄마와 꼬마 아이들이 있었다. 며칠 뒤 선물을 한아름 들고 올 아빠에게 잘 다녀오라고 신나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 옆에서 나만 조용히 훌쩍였다. 조금 뒤 세 살쯤 된 꼬마 아이가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엄마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엄마도 내가 알아듣지 못할 걸 아는지 내 앞에서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큰 소리로 설명해줬다) "엄마 저 사람은 왜 우는거야?"라고 물었을 게 분명하다. 엄마가 뭐라고 대답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통화를 할 때면 P군은 "그래서 언제 올건데. 빨리와"란 말을 되풀이했다. 서로 떨어져있는 거지만 그가 느낄 상실감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안다. 일상에서 누군가 사라졌을 때 빈 자리가 더 쓸쓸하게 다가올 것이다. P군이 해외 출장을 갈 때 가끔 내가 느꼈던 것처럼.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이 많은 P군이 한국을 떠나고 나면 일상이 고요해지곤 했다. 회사 일에 치이고 친구들과 연락해 만나며 바쁘게 지냈지만 습관처럼 연락을 하던 시간에 하지 못하고 매주 만나던 주말 그 시간에 혼자 있게 되면 가끔 세상에 홀로 남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몇 달째 그 상황에 있었을 P군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가 비행기에 오른 뒤 잠시 상황이 바뀌었다. 공항에 남은 나는 그가 늦지 않게 암스테르담에 잘 도착했는지, 환승은 무사히 했는지 답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이 날 때마다 카톡에 메시지를 썼다. 더블린에 도착해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잘 때까지도 그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내가 자고 일어났을 땐 P군이 내 질문들에 답을 단뜩 남겨두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질문들도 함께.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평소 전시회에 관심 없던 P군은 프라도 미술관에 다녀온 뒤 소피아미술관도 꼭 가고 싶다고 안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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