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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Dec 05. 2016

츄러스와 스페인 커피

의도치 않게 스페인 여행 중 매일 아침은 츄러스(외래어 표기법 상 추로스가 맞는듯 하나 왠지 '츄러스'에 정감이 간다)로 시작했다. 아침식사로 츄러스를 먹는다는 현지인을 굳이 따라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밥을 먹으러 가면 어디든 츄러스를 팔고 있었다. 바(bar)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과 츄러스를 즐기는 이들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같은 걸 주문하게 됐다.


스페인이라고 아무데서나 츄러스를 먹어도 다 맛있는 건 아니다.

 

아저씨가 '툭'하고 내놓은 투박하게 생긴 다 식은 츄러스가 여행 중에 계속 생각났다




줄 서서 먹는 마드리드 '산 히네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맛집은 잘 가지 않는 편이다. 그런 곳에 가면 한국 관광객이 다녀간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고 심지어 직원들이 약간의 한국어를 구사한다. 저자가 발품을 팔아가며 엄선해 소개한 곳일테지만 현지 느낌을 상실한 채 관광객들만을 위한 공간이 돼버린 곳들이 종종 있다. 그래도 백 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산 히네스에는 가봐야만 했다.


가게가 위치한 골목에 접어들자 긴 줄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서 있었다. 물론 한국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들어서자 직원은 기계처럼 주문을 받았다. 츄러스와 초코라떼를 몇 개 주문할 것인지 물었다. 직원들은 쉴새 없이 그릇에 츄러스를 담고 잔에 초코라떼를 채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그릇을 날랐다. 관광객들은 테이블에 도착한 츄러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명한 만큼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곳. '뭐 특별한 거 없네'하며 먹다보니 어느새 빈 그릇@산히네스



비싼건 맛있다


바르셀로나에선 에어비앤비 숙소에 머물렀다. 주인의 설명과 여러 정보를 종합해 숙소를 잡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보른지구'였다. 보른지구는 연남동 같았다. 숙소를 나오면 바로 아래 꽤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와인바가 있고, 한 조각에 2유로인 이탈리안 피자를 파는 곳도 있었다. 조금 더 걸어나가면 골목 곳곳에 작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연신 "저기 괜찮아 보인다" "저기 나중에 가보자"를 외쳤다.


츄러스 집은 우연히 발견했다. 집을 나서 가이드가 소개해준 커피를 먹으러 가는 길에 전날과 다른 길로 가보자며 방향을 틀었다. 골목길을 나서자 맞은편에 파란문의 츄러스 가게가 나타났다. 머뭇거리다 들어가자 회색 머리를 하나로 단정하게 묶고 앞치마를 멘 좋은 인상의 할머니가 우리를 맞이했다. 순간 의사소통이 안 되면 어쩌지 걱정했으나 먼저 "츄러스?"라고 말하며 츄러스를 종이에 담아주곤 이 정도면 되느냐는 시늉을 해보였다. "Yes"를 외치자 별 다른 설명 없이 츄러스와 초코라떼 두 잔을 내어주셨다. 스페인에 와서 이미 여러 번 츄러스를 맛보았지만 고소하고 바삭한 맛에 반해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었다. 계산하려 하자 할머니가 손으로 적은 계산 종이를 내밀었다. 약 12유로. 예상치 못한 가격에 놀라 그제서야 100g 당 가격을 확인했다. 살짝 당황했지만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흔쾌히 돈을 냈다.


마지막 날도 캐리어를 끌고 츄러스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전날 본 우리를 기억하는 건지 (아니면 모든 손님에게 그렇게 하는 건지) "츄러스 먹을거지?"란 뉘앙스가 느껴지게 "츄러스?"라고 물었다. 갔을 땐 막 츄러스가 튀겨지고 있었다. 따끈한 츄러스는 더더욱 맛있었다. 바삭한 츄러스에 따끈 달콤한 초코를 듬뿍 묻혀 말도 없이 한 봉지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츄러스를 주시곤 반죽을 하셨는데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가 반죽 치대는 걸 거들었다. 츄러스를 먹으며 P군과 "저렇게 힘들게 만드니 좀 비싸도 괜찮은 것 같아. 또 먹어도 역시나 맛있잖아"라고 큰 소리로 얘기했다.




바르셀로나 츄러스 맛집


바르셀로나 츄러스 맛집을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고딕지구 츄레리아인데 계속 일반 츄러스를 먹어 새로운 도전을 해본 것이 화근이었다. 화이트 초콜릿이 묻은 츄러스와 안에 뉴텔레가 잔뜩 든 츄러스를 골랐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






에스프레소에 우유 '코르타도'

바르셀로나 (사실상) 여행 첫날 야간 산책 투어에 참여했다. 가이드는 중세 느낌이 물씬 나는 미로같은 고딕지구 골목들을 누비다 여행자들을 이끌고 보른지구로 넘어갔다. 벌써 수 년째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그는 동네 맛집을 자랑하듯 몇몇 가게들을 소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추천했던 곳이 이 카페였고, 다른 것보다도 '코르타도'를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가우디투어를 한 탓에 피곤해 조금 여유있게 숙소를 나섰다. 덕분에 10시에 문을 여는 이곳을 들를 수 있었다. 도착하니 이미 서너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 코르타도나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우리도 코르타도 두 잔을 주문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짐을 정리하며 커피 맛을 음미하는 사이 카운터 앞에 늘어선 줄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가우디투어를 담당했던 가이드였다.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나던 그는 익숙하게 직원과 대화하며 코르타도 한 잔을 주문했다. 우리도 그도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뇌를 깨워줄 카페인이 절실했던 듯 하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반가워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헤어졌다.


이후 삼일 내내 출근 도장을 찍듯 카페에 들러 코르타도를 한 잔씩 사들고 여행을 시작했다. 커피는 카페가 있는 골목에서 큰 길로 나가기 전 동이 났다. 늘 카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 있는 같은 쓰레기통에 종이컵을 버렸다. 다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듯 그 쓰레기통엔 이 카페 종이컵이 그득했다.  






피카소 단골 카페_4CATS


하지 못한 일이 더 많았지만 마지막 밤은 금방 왔다. 어딜 가서 여행을 마무리할까 고민하다 피카소의 단골 카페였다던 4CATS를 찾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루를 정리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정신이 산만해졌다. 레스토랑도 겸하는 곳이었는데 식사를 안 하고 와인도 마시지 않는 손님이라 그랬는지 (기분 탓이겠지만) 홀대받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별 얘기도 않고 늦은 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빠르게 들이켜고는 바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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