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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Dec 10. 2016

관광객이 없는 길

세고비아와 톨레도 걷기

"혹시 여기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금 전 저 남자도 여기 어떻게 가는지 물었는데. 이 길 따라서 내려가면 돼요."


알카사르 앞에서 만난 안내 직원은 벼랑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손가락으로 S자를 그려가며 가는 길을 설명했다. 눈으로 손가락을 따라갔지만 뚜렷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앞서 길을 물었다는 남자는 직원이 말해준 방향과는 반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일명 '백설공주성'이라 불리는 알카사르가 올려다 보이는 풍경을 떠올려보면 내려 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가파른 길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부터 올라올 때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무리 코트 자락을 단단히 여며도 찬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지도를 든 손도 덜덜 떨렸다.


일단 직원이 알려준 방향으로 향했다. 춥고 배고파 말이 사라진 P군을 "고생한다"고 달래며 맞는지 확신도 없는 길을 걸어갔다. 구글맵으로 검색도 안 되니 관광안내소에서 직원이 지도에 찍찍 그려준 선에만 의존해야 했다. 지도에 나온 곳도 아니었다. 뷰 좋은 곳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직원이 지도에 X자로 표시해준 곳이라 가면서 길이 맞는지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언덕길을 다 내려 가자 차도가 나왔고, 커브를 돌아 내려가자 물이 나타났다. 물을 건너자 숲길이 이어졌다. 길에 관광객은 우리 뿐이었다. 나무가 시야를 가려 알카사르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 지나 시야가 트이자 비로소 저 멀리 높은 곳에 알카사르가 나타났다.




@세고비아 골목을 거닐 땐 느끼지 못했던 가을


@산책길에서 본 물에 비친 알카사르


희망을 찾은 듯 P군은 말을 되찾았다. 연신 사진을 찍으며 "멋있다"를 반복했다. 에너지를 충전하자 P군은 "좀 더 가볼까?"라며 적극 나섰다. 얼마가지 않아 너른 잔디밭이 나왔다. 고개를 드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만화영화에서 보았음 직한 성이 서있었다. 한국인 커플이 삼각대와 소품을 챙겨와 사진을 찍고 있어 잠시 구석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며 성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자리를 뜨자 우리만 남았다. 그리고 마음껏 조용히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알카사르



@로마 수도교




@코치니요 아사도. 홀에서 갑자기 '탕 탕'하고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 식사를 하던 사람들의 이목이 한 곳에 집중된다. 새끼돼지 요리는 칼로 자르지 않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접시로 자른 뒤 바로 각 테이블로 전해진다. 미각뿐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 모두 어우러져 식사 시간을 즐겁게 만든다. 코치니요 아사도 껍질은 바삭하고 살코기는 굉장히 부드럽다.




톨레도


아침 일찍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톨레도에 도착했다. 비몽사몽 내리자마자 한기에 하나 더 가져온 외투로 급히 몸을 감쌌다. 지도부터 챙겨야겠단 생각에 Map이란 글자만 보고 터미널 안 작은 가게로 향했다. 지도가 있냐고 묻자 "English?"라고 외친 아저씨는 지도 한 장을 꺼내들더니 볼펜으로 선을 그려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가 사용한 말의 대부분은 Walk Walk Picture Picture였지만 열정적으로 알려주시기에 중간중간 호응을 해가며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 마침내 볼펜을 내려놓은 그는 "3유로"라며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주는 공짜 지도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이미 지도에 잔뜩 선이 그려져있어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돈을 내고 나와 둘러보니 '인포메이션 센터'란 표지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 유료 지도란 말도 없었다.


3유로의 충격에 빠져 헤롱대는 사이 P군은 분홍선을 따라가면 된다며 나를 이끌었다. 선을 따라 걸어가자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났다. (지도 없이도 구시가지에 충분히 찾아갈 수 있었다) 끊없이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 덕에 손쉽게 높은 언덕 위 톨레도 구시가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톨레도에선 골목골목을 걷는 것도 좋았지만 시내를 빠져나가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이 좀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 빨간 꼬마열차다. 열차는 설명과 함께 구시가지 인근을 한 바퀴 돌다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잠시 정차한다. 사람들은 오분 남짓 주어진 시간 내 사진을 남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지성과 이보영이 화보를 찍어 유명해진 톨레도 파라도르 호텔 테라스도 시내 전경을 보는 명소로 꼽힌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실 겸 파라도르 호텔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듯 카페 직원은 "테라스?"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북적일 거란 예상과 달리 한 두 테이블 정도만 차있었다. 톨레도에선 어딜 가든 사람들이 많았기에 조용하게 시내를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어 감사했다. 꼬마열차를 타고 내려 사진을 찍을 땐 어디서 찍어도 옆 사람이 걸려 전쟁처럼 인증사진을 남겨야했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파라도르 호텔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톨레도 구시가.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호텔을 나왔는데 앞이 휑했다. 한국에선 호텔 앞에 늘 택시가 즐비하지만 여기선 꼬빼기도 볼 수 없었다. 누군가 택시를 타고 호텔에 올라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일단 걸어내려가며 택시를 잡아보기로 했다. 차로 구불구불 올라왔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도도 없는 길이었다. 도로를 따라 걷는데 바람은 불었지만 햇살이 따스했다. 호텔에선 멀찍이 보이던 시내가 점점 가까워졌다. 20분쯤 내려가니 꼬마열차로 지나쳤던 길이 나왔다. 그때까지도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걷는 걸 즐기기로 했다.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타호강을 따라 걸으며 눈을 떼지 못하고 왼쪽으로 펼쳐진 전경을 마냥 바라봤다. 떠올려보니 아침에 지도를 판 아저씨가 Walk Walk Picture Picture하며 연신 설명했던 곳이 이 길이었다. 사람도 없었고 열차 전망대나 호텔에서 내려다본 것보다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전경을 바라본 세 곳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3유로를 도둑맞은 것 같아 아침부터 퍅퍅거렸는데 (의도치 않게 발견했지만) 거짓된 정보는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누그러졌다.


50여분 만에 구시가지로 향하는 문인 '알칸타라 다리'가 등장했다. 문을 통과하자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반나절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눈에 익힌 익숙한 건물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자 반가웠다.






@알칸타라 다리
@비사그라 문


@엘 그레코 미술관. 크게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 정원을 마주한 순간부터 반한 곳이다.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긴 했는데 대신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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