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의 더블린, 겐트, 브뤼셀 그리고 레이캬비크
크리스마스 즈음 유럽은 또 다른 옷을 입는다. 거리는 온통 불빛으로 반짝이고 곳곳엔 트리가 서있다. 들어가는 가게마다 캐럴이 흘러나온다. 버스킹하는 이들도 이때만큼은 레퍼토리를 바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음악을 연주한다. 오가는 이들은 도시에 울려퍼지는 캐럴을 하루종일 흥얼거린다. 쇼핑가는 사랑하는 이들의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활기를 띈다. 가게 앞에 붙은 세일 문구는 쇼핑할 마음이 없던 사람마저 안으로 불러들인다. 모두들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얼굴에서 미소를 떠나보낼 줄 모른다. 각 도시엔 전통을 자랑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지역주민뿐 아니라 바다 건너 사는 이들까지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정작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엔 고요함이 내려앉는다.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아예 열지 않는 곳도 많다. 스산함이 느껴질만큼 한산해진다. 휴일을 맞아 찾아온 관광객들만 문 연 곳을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거리를 오갈 뿐이다. 크리스마스 당일엔 비행기(라이언에어 기준)가 운행하지 않는다. 더블린에선 버스도 안 다닌다. 연휴를 맞아 모두들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더블린
아일랜드엔 최근 생긴 크리스마스 풍습이 있다. '크리스마스 점퍼'를 입고 12개 펍을 돌면서 술을 마시는 것. 처음 듣고 '참 아일랜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펍을 지날 때면 크리스마스 점퍼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우르르 몰려다니곤 했다.
@크리스마스 점퍼(왼쪽) 더블린에서 크리스마스 플리마켓이 열린다고 해서 찾아갔다. 한 구석에 빈티지 물건을 파는 곳이 있었다. 오래된 엽서도 팔고 있어 구경하고 싶었는데 한 여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 하나하나 꼼꼼히 보는 탓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한 바퀴 다 돌고 갔는데도 쪼그리고 앉아 있어 포기해야 했다.
@Stephen's Green 쇼핑센터(왼쪽)와 Arnotts 백화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동안 집으로 가는 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용 나무를 진열해 놓고 팔았다. 어릴 때 트리를 만들긴 했지만 가짜 나무에만 해봐서 신기했다. (왼쪽) Grafton Street 트리(가운데)와 스파이어 인근 트리
@Grafton Street 입구에 게일어로 써있는 'Happy Christmas'(왼쪽)와 이 거리에 있는 Bewley's Cafe.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한다. 여기 가고 싶어 문을 닫은지 모르고 Grafton Street를 계속 오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조만간 원래 건물 공사가 끝나 문을 연다는 문구가 붙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건물을 지지하던 철 구조물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선물이 등장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풍경.
겐트와 브뤼셀
유럽에 오기 전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는 걸 몰랐다. 여행자 밋업(meet up)에 갔다 크리스마스엔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야 한다는 얘길 듣고서야 비로소 유럽 전역에서 마켓이 열린다는 걸 알았다. 2월에 베를린 여행이 예정돼있어 다른 곳을 물색하다 더블린에서 멀지 않은 벨기에를 선택했다. 떠나기 몇 주 전 벨기에에 다녀온 사람은 거리에 총을 든 군인들이 배치돼있어 삼엄한 분위기 때문에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3월 일어난 벨기에 테러가 떠올랐다.
도착해서 본 벨기에에도 역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이들, 추위 속에서서로 온기를 나누 듯 두 손을 꽉 잡은 노부부,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들, 왁자지껄 술잔을 들고 떠드는 친구로 보이는 무리 등이 가득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관람차, 웃음소리와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이스 스케이트장은 흥을 돋우웠다.
미리 크리스마스를 한껏 느끼고 더블린으로 돌아오자마자 비보를 들었다.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죽고 40여명이 다쳤다. 행복하게 거리를 걷던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다. 베를린에서도 사람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었겠지. 모두들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길 기원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 마켓'이라 이름붙은 곳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던 이들을 상대로 일어난 비극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겐트, 벨기에
@브뤼셀, 벨기에
레이캬비크
크리스마스를 아이슬란드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뒤 선물처럼 쏟아질 '오로라'를 기대했다. 하지만 오로라 대신 눈만 연신 펑펑 내렸다. 실망한 나와 달리 대만에서 온 친구는 태어나서 처음 눈을 본다며 "내 인생 첫 진짜 크리스마스"라고 아이처럼 신나했다. 그의 기분을 망칠 수 없어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연신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 덕분에 나 역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었다.
@레이캬비크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