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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Jan 12. 2017

모든 것이 새로운 '올드타운'

바르샤바(Warsaw), 폴란드

"전쟁으로 모든 게 무너졌다. 그래도 지금 당신들이 여기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바르샤바를 포기하지 않고 재건에 나섰다. 시간이 흘러 이제 바르샤바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가 됐다."


프리워킹 투어 가이드 안나의 말이 바르샤바의 역사를 함축했다. '올드타운'이라 이름붙은 거리를 거닐었지만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 백 년된 건물 하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 설명을 듣다보면 안나는 매번 말 끝에 "이것도 새로 지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때마다 바르샤바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됐던 곳이란 점을 상기하게 됐다. 


독일 침공 이후 1943년 게토 봉기와 44년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면서 독일은 도시를 철저히 파괴했다. 건물의 80% 이상이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사람들은 마냥 기쁨에 취해있을 수 없었다. 선택이 필요했다. 새로운 곳으로 수도를 옮길 것인가 도시를 다시 세울 것인가. 그때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바르샤바는 지도 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며 도시를 만들어갔다. 남아있는 사료에 의존해 최대한 이전의 모습을 되찾고자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후 바르샤바에는 일 할 사람이 없었고 건설에 필요한 장비도 없었다. 말 그대로 '사람의 힘'으로 건물이 올라갔다. 바르샤바 올드타운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바르샤바 역사 지구는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파괴한 도시를 종합적으로 재건한 우수 사례"라는 등재 기준을 밝혔다. 또 "세계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규모로 유산의 재건이 이뤄졌다"고 평했다. 후에 바르샤바 재건 사무소 기록물 역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새로지어진 건물의 가치보단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에 점수를 준 듯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 자리에 아직 아이스 스케이트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주위 건물 중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전쟁의 포화 속에 사라지고 새롭게 지어졌다. 가운데는 바르샤바의 상징 '인어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인어가 밤마다 물가로 나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걸 사람들이 감상하곤 했는데 누군가 인어를 잡아 가두었다고 한다. 그때 '바르'란 이름의 남자가 인어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주었다. 인어의 이름은 '샤바.' 인어는 감사의 뜻으로 이 도시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워킹투어하면서 들은 내용인데 검색해보니 사람들이 적은 전설의 내용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전설은 원래 구전되면서 바뀌긴 하는 거지만)



@행운의 종. 종 위쪽을 잡고 주위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 발로 뛰면 더 효험이 있다고. 멀리서 봐도 수많은 소원이 스쳐간 종 윗쪽만 색이 바랬다. 혼자 쭈뼛대고 있는데 한 커플이 오더니 깨금발로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나보다. 여름엔 종에 손 한번 얻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다지만 겨울이라 그들이 가고나선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공산주의의 흔적


폴란드의 재건활동이 오롯이 그들의 바람대로 진행된 건 아니었다. 전후 치른 총선에서 폴란드 공산당과 사회당이 중심이 된 인민전선이 승리하면서 폴란드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물자와 인력이 부족한 가운데 도시 재건이 진행됐다. '왕궁'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의회가 열리기도 했고, 유럽 최초로 성문헌법이 통과되었던 이 곳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복원이 진행됐다. 


또 한 곳. 성 요한 대성당 역시 공산주의의 입김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구시가지 건물들이 사료를 바탕으로 제 모습을 되찾았지만 성 요한 대성당은 새로운 성당이 돼야했다. 기존 성당은 영국의 건축양식을 따라 건축되었다. '자본주의' 대표주자인 영국을 따르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무너지기 전 성당 사진이 남아있었지만 성 요한 대성당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완성됐다. 


  

@왕궁
@성 요한 대성당


'공산주의'는 현재 사실상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동구권엔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리했으나 이제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 여행을 갔을 때 길거리를 가득 메운 명품 매장을 보면서,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폴란드엔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92년 들어온 맥도날드는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유니폼을 맞춰입을 직원들이 웃으면서 주문을 받았다. 실내 인테리어는 깔끔했고 원하는 메뉴는 모두 선택할 수 있었다. 첫 맥도날드가 문을 연 날 목사(혹은 신부)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맥도날드는 젊은층에서 최고의 데이트 장소로 꼽혔다. 가족들은 외식을 하러 손을 잡고 맥도날드로 모여들었다. (10여년이 지난 후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잠깐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깨달음이.)


폴란드 식당 '밀크바'는 공산주의 산물이다. 자본주의의 값비싼 레스토랑과 비슷한 효과를 주면서도 노동자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식당이 필요했다. 지금도 밀크바에선 적은 예산으로 한끼를 즐길 수 있다. 대신 감내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안나는 "직원이 웃으면서 친절하게 "무엇을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밀크바가 아닐거에요. 메뉴판에 있는 메뉴가 다 있고 혹 없을 때 '미안하다'라고 하면 그건 100% 당신이 밀크바가 아닌 곳에 있단 얘기에요"라고 말했다. 밀크바는 그에게 역시 도전이라고 했다. 만약 '모험'을 원한다면 밀크바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밀크바에 얽힌 일화가 꽤나 흥미로웠다. 달라이 라마가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달라이 라마와 폴란드 정치인들은 함께 구시가지를 돌아보다 티타임을 갖게 됐다. 그때 달라이 라마가 고른 카페는 (폴란드 정치인들 생각에) 하필이면 밀크바였다. 그 곳 계산대 직원은 정치인이건 누구건 모두에게나 무뚝뚝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의전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좋은 것만 대접해도 부족할 판에 달라이 라마가 낡은 건물에 뚱한 표정의 직원이 있는 밀크바를 고르니 안절부절할 수밖에. 별 일 없이 달라이 라마는 밀크바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시가지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안나는 혹 여기 가면 달라이 라마가 마셨던 찻 잔에 차를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밀크바





@코페르니쿠스 동상 맞은 편엔 '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십자가교회가 있다. 여행 준비를 제대로 못 하고 간 탓에 돌아와서야 그 성당인 걸 알았다. 



@바르샤바 대학 입구.


@시시각각 변하던 바르샤바 날씨. 아주 잠깐 맑았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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