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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Jan 29. 2017

더블린 생활인과 여행자 사이

친구가 더블린에 왔다!

언제부턴가 집을 나설 때 이어폰을 꽂기 시작했다. 한동안 거리를 걸을 때 음악을 듣지 못했다. 한국에선 귓가에 뭐라도 흘러나오지 않으면 허전해 견딜 수 없었지만 여기선 그런 여유가 없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했다. 차량 주행 방향이 한국과 반대라 길을 건널 땐 두 배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동차의 움직임과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신이 팔린 사이 소매치기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음악을 앗아간 요인 중 하나였다. 그래도 심심하진 않았다. 


더블린 생활이 3개월을 넘어서면서 매일 새롭던 풍경들이 일상이 됐다. 처음엔 신기해 볼 때마다 찍던 다양한 색의 문들도, 자주 따라 걷던 운하길도 학원을 가기 위해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 돼버렸다. 듣기 연습 삼아 귀를 쫑긋거렸던 사람들의 말소리, 안전을 위해 긴장하며 듣던 자동차 소리는 소음으로 변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초반과 달리 발걸음은 '나중에 언제든 가면 되지'라며 집으로 이끌렸다. 구름이 가득하면 흐리니 사진이 잘 안 나올 거라는 이유로, 몸이 찌뿌듯하면 무리하지 말자며, 비바람이 불면 감기 들면 큰 일이니 안 가는 게 잘하는 거라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어디보다도 편안한 내 방, 내 침대 위로 향했다.    


친구의 더블린 방문은 잠들어있던 '여행자'의 본분을 일깨웠다. 내가 더블린에 여행 왔다면 첫 번째로 어딜 갔을까. 런던에 여행 왔다 더블린에 하루 들르는 친구에게 보다 많은 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왕이면 "생각도 안 했던 여행지인데 막상 가보니 정말 좋더라"라는 얘길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여기 와서 좋았던 곳들을 떠올려봤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업실이 있는 휴레인(Hugh Lane) 미술관과 사슴을 코 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피닉스 파크, 답답할 때 생각 없이 따라 걸으며 백조를 구경하는 운하 등이 생각났지만 금세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뭐래도 더블린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기네스'다. 


펍에서 기네스는 마셨어도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엔 가보질 않았다. 공교롭게도 친구가 오기 전날 학원 친구들과 관련 얘길 했는데 '돈 아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이리쉬 선생님 역시 초등학생 때 견학 간 뒤로 한 번도 안 가봤다고 거들었다. 20유로 입장료엔 기네스 파인트 한잔을 마실 수 있는 티켓값이 포함돼있는데 그 돈이면 펍에서 3잔은 족히 마실 수 있으니 그동안 특별히 구미가 당기질 않았다. 하지만 친구에겐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나 역시 삿포로에 갔을 때 맥주 박물관에 갔었고,  바로 따로 주는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더블린을 대표하는 기네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그래비티 바'




평소와 달리 집을 나서는데 괜히 이것저것 신경이 쓰였다. 잔뜩 흐려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도 그러려니 했던 날씨지만 제발 맑기를 기도했고, 거리도 좀 더 깨끗하길 바랐다. 전날 펍을 즐긴 이들이 남긴 흔적들이 곳곳에 눈에 거슬렸지만 비가 오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곧장 트리니티 대학교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길이 엇갈릴까 싶어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항버스가 들어오는 길목을 계속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손을 흔들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동안 사는 이야기들이 잔뜩 밀려있었지만 일단 친구를 '롱 룸 도서관'으로 이끌었다. 처음 사진을 보고 꼭 가야겠다고 맘먹고 입장료 때문에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트리니티 학생은 무료고, 1인을 동반할 수 있단 얘기에 트리니티 다니는 친구를 혹시 사귀게 되면 가보려고 미뤄뒀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서관뿐 아니라 세계기록유산이자 아일랜드의 보물인 '켈스의 서(Book of Kells)'로 유명하다. 둘러보는 내내 친구의 반응이 신경쓰였다. 


점심을 먹고 친구가 기대했던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로 걸어갔다. (내게 한 시간 이내 거리는 걷는 게 자연스럽기에 친구에게도 걷자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새벽 일찍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에겐 조금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네스 역사를 슬렁슬렁 살펴보고 꼭대기로 올라갔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따른 기네스 파인트 한 잔씩을 들고 더블린을 내려다보았다. 잔을 비우고 아쉬움에 미리 알아봐 둔 펍으로 친구를 이끌었다. 가는 길에 '템플바'에 들러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왠지 분위기보다도 '아이리쉬 댄스'를 볼 수 있는 곳에 데려가고 싶었다. 하나라도 더블린에 대해 더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이미 맛본 기네스 대신 아일랜드 사이다(술이다)인 'Bulmers'를 추천했다. 


함께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리피강을 건널 땐 '하페니 다리'의 유래를 얘기하고, 이미 문을 닫은 더블린 성 주변을 돌며 투어 때 들었던 역사 얘길 줄줄 늘어놓았다. 운하를 지나칠 때도 백조를 보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집에 와선 전날 사다 놓은 맥주를 꺼내와 밀린 수다를 하고 싶었는데, 피곤했던 친구는 "잠깐만"이라고 침대에 누운 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시 뒤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친구를 보며 의욕이 과했나 싶어 미안해졌다. 





트리니티 칼리지 '롱 룸(long room) 도서관'





아이리쉬 댄스


@처치 펍(church pub). 교회였던 건물을 펍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이리쉬 댄스. 




템플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템플바





친구


@당일치기로 더블린 오느라 고생한 친구. 떡볶이 잘먹었다!



보여주고 싶었던 곳


@Grand Canal



@더블린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알록달록 대문들



@유럽에서 제일 크다고 알려진 '피닉스 파크'는 공원을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사슴들로 유명하다. 사슴을 발견하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다가갔는데 먹이라도 들고 온 줄 알고 카메라로 달려드는 사슴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슴은 얻을 게 없자 카메라에 코도장만 쾅 찍고 느릿느릿 뒤돌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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