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k Jan 25. 2017

친구의 나라, 벨기에

예정된 합격자 발표날 전날. 초조한 마음에 회사 홈페이지와 지원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계속 들락거렸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정신을 딴 데로 돌리려고 해도 어느새 손엔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맞닥뜨린 10명의 합격자 명단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곤 기쁘기보단 얼떨떨해졌다. 졸업 후 일 년만에 '소속'이 생겼다.


동기 중 여자는 한 명뿐이었다. 예비소집일에 본 깡마른 체구에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를 하고 정장을 차려 입은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S의 첫인상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는 날, S는 페이스북에 긴 글을 남겼다. '최종면접 때 봤던 사람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는 글을 보곤 열없어졌다) 과연 저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한 명뿐인 여자 동기가 가장 신경쓰였다. 교육받으며 함께할 시간이 긴데 안 맞으면 영 피곤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서로 공통점을 탐색하면서 비슷한 점이 많아 내심 놀랐다. 대학 때 국제구호와 ODA 쪽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던 것도, 영화와 책 취향도 맞았다. 그의 추천 영화는 늘 나를 만족시켰다. 소싯적 좋아한 아이돌은 다르지만 같은 소속사였다. 'SM라인' 취향마저 같았다. (S의 덕질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덕분에 많은 일들을 같이 했고 매번 즐거웠다.


S는 늘 내게 벨기에 얘길 했다. 그곳에서 교환학생을 한 그에게 벨기에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파노라마로 줄줄 이어지고 그리움이 함께 밀려오는 곳. 초콜릿 이야기를 할 때면 "고디바는 하급이야. 벨기에에 더 맛있는 초콜릿이 많아"라며 고개를 가로저였다. 감자튀김을 먹을 때도 벨기에에서 먹었던 맛을 그리워했다. 지난해 3월 벨기에 테러 땐 누구보다 마음아파했다.


유럽에 온 뒤 벨기에가 불쑥 생각났다. 애초 여행을 계획할 땐 생각치 않은 나라였다. 크리스마즈 즈음 벨기에에 간다는 말에 S는 "전도에 성공했어"라며 기뻐하면서도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브뤼셀 크리스마스 행사 소식, 맛집 소개 등을 하나씩 툭툭 내놓았다. 벨기에를 여행하는 중에 SNS에 사진을 올리면 "난쟁이 그려진 맥주 꼭 먹어야돼" "우리나라 길거리에 떡볶이 팔듯 감자튀김 파는데, 꼭 먹어" 등 바로 댓글을 달며 벨기에를 속속들이 보고 오라고 채근했다. 불어 홍수 속에 가이드북도 없고 준비도 많이 못한 채 떠난 여행이었지만 덕분에 든든했다.


벨기에를 떠나는 날 고마움과 그리운 마음을 담아 엽서를 보냈다. 동생이지만 회사에서 힘들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고, 누벨바그 영화 강의, 퍼스널 컬러진단, 러시아 여행 등을 함께 해준 벗이었고, 때로는 살가운 막내로 퇴사할 때까지 고민들을 들어준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 점심 때 같이 맛집 찾아다니거나 마감 후 한숨 돌리며 커피를 마시는 걸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도. 이곳의 공기도 풍경도 덕분에 맛있게 먹은 감자튀김과 와플, 어느 것 하나 보내주지 못했지만 엽서가 부디 좋은 기억들을 불러와주었기를 바란다.


 

@더블린 집으로, 한국 집으로, P군에게, S에게 그리고 십 여 년 전 함께 르네 마그리트 전시를 갔던 오랜 벗에게 한 장씩.




브뤼셀

@그랑플라스 라이트쇼.
@장난감병정 앞으로 장난감 차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오줌싸개 동상. 조그마한 그 사내아이가 지구보다 큰 질량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당긴다.


@르네 마그리트 뮤지엄은 두 개다. 하나는 시내 관광지와 도보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마그리트 생가를 박물관으로 꾸며놓은 곳인데 작품은 없다. 굳게 닫힌 문 앞엔 '벨을 두 번 눌러 달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벨을 누르자 직원 한 명이 나왔다.  이상한 마음에 다짜고짜 지도를 내밀며 위치를 확인했다. 그는 "음. 마그리트 뮤지엄이 두 개 있는데 네가 칮는 곳은 아마 왕립미술관에 있는 곳일더야"라고 설명했다. '혹 들어가서 둘러볼 수 있냐'는 물음에 7유로(?)의 입장료가 있는데 괜찮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그의 말투에서 '너 진짜 그 돈을 내고도 보고 싶어?'란 뉘앙스가 느껴져 곧바로 왔던 길을 되짚어 진짜 마그리트 미술관으로 향했다.


 


겐트

@숙소를 나와 덜덜덜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려는데 안개가 만든 풍경에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상업으로 번성했던 도시. 물길을 따라 돈이 흘러들어왔다. 오랫동안 배를 탄 선원들은 내리자마자 술과 여자를 찾아나섰다. 짧은 정박 시간에 쫓기는 이들에겐 골목골목을 찾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 메리어트 호텔로 쓰이는 건물엔 등을 돌리고 있는 백조 문양이 남아있다.  마주본 백조는 '하트' 모양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백조는 매춘부들이 있다는 사인이었다고 한다.


겐트에선 개인 소유 건물일지라도 파사드를 함부로 손댈 수 없다. 리모델링은 물론 색을 칠하는 것 역시 정부의 허락이 필요하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덕분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있다.




@보트트립 회항 지점. 가이드는 맨 오른쪽 건물이 곧 철거될 예정이니 꼭 사진으로 남겨두라고 했다.
@전날 지나갈 때도 봤는데 다음날 지나가다 보니 신발이 늘었다.






브뤼헤



@마차투어 말들의 주차장(?)


@브뤼헤 시청 광장. 비눗방울 하나에 웃음 하나 그리고 행복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진짜 크리스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