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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Mar 22. 2017

햇볕, 바람 그리고 빨래

포르투갈 첫인상

오랫동안 포르투갈이 마카오와 같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홍콩 여행 중 반나절 들른 마카오는 파스텔톤 건물과 걸을 때마다 발바닥을 자극하는 울룩불룩한 바닥으로 기억됐다. 여기에 맑은 날씨가 더해져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결과물이 마음에 들었다. 골목 안에 위치해 조금 찾기 힘들었던 에그타르트 맛집 역시 만족스러웠다. '마카오'란 이름에서 떠올리지 못했던 모습들은 포르투갈 식민지의 영향이라고 했다.


포르투갈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대륙 서쪽 끝 나라는 거리만큼이나 심적으로도 멀게 느껴졌다. 세상엔 가야 할 곳이 많았고, 여행지를 결정할 때면 보다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먼저 마음이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포르투갈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몇 년 전 개봉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희미하게 남아있던 포르투갈이란 이름에 색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이번 여정의 첫 행선지는 '포르투'가 되었다.



한동안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끌고 여기저기 쏘다니다 처음으로 더블린에 올 때 들고 왔던 24인치 캐리어를 꺼내 들었다. 분명 더블린에서 특별히 산 것도 없고 방을 정리하며 한국으로 짐도 부쳤는데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짐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옷가지 몇 개를 버리고 비상식량으로 쟁여둔 라면도 뺐다. 공항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거리 연석에도 휘청거렸다. 한 번씩 덜컹거릴 때마다 캐리어 위에 올려놓은 보조 가방이 들썩이고 양 어깨에 각각 멘 가방들이 흘러내렸다.


그건 시작해 불과했다. 포르투 지하철 계단에선 친절한 남성의 도움으로 캐리어를 손쉽게 옮기고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한숨돌린 사이 돌길이 펼쳐졌다. 번화가에 들어찬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캐리어를 밀었다. 마음과 달리 캐리어는 돌부리에 계속 부딪쳐 제멋대로 뒤집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 때면 하이힐을 신고 걷다 보도블록 사이에 굽이 껴 신발 한 짝이 벗겨진 채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짐을 두고서야 포르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캐리어를 끌고 가다 흘끔 보고 지나쳐버린 교회 건물을 다시 찾았다. 벽면 가득한 아줄레주는 화려하다기보단 소박하게 다가왔다. 색을 다양하게 쓰지 않고 하얀 타일에 청색으로 그린 그림을 보며 청화백자가 떠올랐다. 주변의 차가운 회색빛 건물들은 아줄레주에 화려함보단 차분함을 더하는 듯했다. 오랫동안 상상으로 쌓아올렸던 포르투갈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상벤투 역
@상벤투 역


포르투의 골목은 파스텔톤의 화사한 건물이 아니라 색이 바래고 낡은 건물들이 만들고 있었다. 차 한 대 지나가면 딱 맞을 언덕길 양 옆으론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집들이 쭉 이어졌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여기 살고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빨래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후미진 골목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루 강 앞 광장 건물에도 빨래가 걸려 있었다. 사생활이 신경 쓰일 법한데도 개이치 않는 듯했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그들이 빨래를 거는 이유가 이해됐다.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건 관광객인 나였다. 건물이나 거리 풍경이 찍고 싶어도 빨래가 휘날리고 있으면 그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 같아 몇 번이나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더블린에선 늘 맑은 하늘이 그리웠다. 특히 겨울은 춥지 않은 대신 눅눅했다. 늘 구름이 가득했고 이따금씩 비가 쏟아졌다. 6개월 간의 더블린 생활에 아쉬움은 남았지만 얼른 햇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떠나고 싶기도 했다. 포르투의 날씨는 그래서 더없이 반가웠다. 머무는 내내 해가 질 때까지 도루 강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건너편 와이너리들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강을 따라 끝에서 끝을 거닐고 내친김에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가 방금 전 앉았던 곳을 바라보며 해지는 것을 기다렸다. 트램이 지나는 다리 위쪽도 올라갔다. 트램이 바로 옆을 지나가며 다리 전체를 흔들 때면 아찔해졌다. 와이너리 투어를 한 날엔 마지막에 포르투 와인 두 잔을 급히 마시고 와이너리를 나온 뒤 좋은 날씨를 벗 삼아 선글라스를 끼어 강가에 앉아 꾸벅 졸았다. 특별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지 않았어도 햇볕과 바람을 즐기는 것 만으로 포르투 여행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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