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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Mar 29. 2017

포르투갈 서점들

약속 시간보다 여유있게 나온 날이면 꼭 버스가 바로 오고 횡단보도에 도착하자마자 신호가 바뀐다. 그럴 때면 꼭 30분 정도가 남는데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약속한 식당에 먼저 가 앉아 있기도 애매하다. 애먼 사람에게 일찍 오라고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때 주위에 서점이 있으면 잠시 시간을 보내기 딱 좋다. 베스트셀러와 신간 코너를 한 바퀴 돌고 여행책을 뒤적이다 보면 상대가 '좀 늦을 것 같아'라고 메시지를 보내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약속 없는 퇴근길 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 나가고 싶은데 비가 와서 밖을 돌아다니고 싶진 않을 때도 서점에 가곤 한다. 진열된 책들을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사 카페에 가서 읽으면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해진다.


여행지에서 서점이란 시간을 일부러 내서 가야 하고, 살 수 없는 책들이 태반인 곳이지만 그래도 꼭 들르게 된다. 길을 지나다 들어가는 서점들은 '습관'적으로, 검색해서 찾아가는 서점들은 약간의 '강박' 때문인 것 같다. 포르투갈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서점, 가장 오래된 서점 그리고 가장 독특한 서점이 모두 있어 꼭 가봐야만 했다.


포르투의 렐루서점(Livraria Lello)은 J.K. 롤링이 해리포터 집필 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유명세를 탔다. 서점 내부 사진을 보며 웅장한 건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정면에서 본 건물이 생각보다 작아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서점 앞에 늘어선 사람들 덕에 알아차렸다.



@렐루 서점


입장료 4유로를 내고 들어가자 계단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갔다. 물 흐르는 듯한 곡선을 보여주는 계단은 서점을 한층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 앞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1층을 다 둘러보고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위에서 아래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래층을 한참 돌았다. 2층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도통 내용을 알 수 없는 포르투갈어로 된 책 표지를 눈으로 훑다 사진집 위주로 책을 들춰봤다. 그도 잠시, 밀려드는 행렬에 서둘러 서점을 빠져나왔다. 책을 사면 입장료 4유로를 빼준다기에 한 권 사볼까 했지만 맘에 쏙 드는 책을 찾지 못했다. 짐을 늘리면 안 되는 여행자이기에 더 신중하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계단 주위엔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내 앵글을 담겼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사진 속에 담겨있을 듯 하다.


렐루 서점은 해리포터 때문에 사람들이 밀려들자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책은 사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관광객 때문에 몸살을 앓던 서점이 낸 묘책이었을 것이다. 책을 사면 입장료만큼 책값에서 제해주니 서점 본질에 맞게 책을 구매하는 이들에겐 사실상 입장료를 받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입장료 때문일까. 이곳이 진짜 관광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서점 중앙에 위치한 계단이 주인공이고 책은 그저 나머지 공간을 채우는 장식품인 것 같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에만 열중했다. 책 냄새보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이곳에선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정답은 없겠지만 내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생각났다.



@내가 본 포르투갈과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해보니 재미있었다.



1732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서점이 있다. 리스본의 베르트랑 서점( Livraria Bertrand)은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기네스 북에 올랐다. 상점가에 위치한 서점 앞엔 밤 늦도록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문을 닫았나 싶어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봤다.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나 뿐. 말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서점엔 몇몇 사람들이 책을 넘겨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서점에 갈 때면 났던 새 책 냄새가 가득했다.



@베르트랑 서점. 외벽의 아줄레주가 인상적이었다.


@여기도 역시나 해리포터&마음에 들었던 사진집




에그타르트 원조집이 있는 벨렘 지구로 가는 길에 LX Fctory를 찾았다. 공장지대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인데, 동네 골목길을 걷다 아치형 문으로 들어가 짧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이 나온다. 디자인 샵, 음식점 등 여러 상점들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이곳에 온 건 온전히 레르 드바가(Ler Devagar) 때문이었다. '천천히 읽기'란 뜻의 이름을 가진 서점이다. 자전거를 타고 날으는 조형물도 그렇지만 그보단 그 뒤로 한눈에 들어오게 진열된 책이 눈에 띄었다. 서점 한 켠에는 라디오 방송을 하는 듯한 부스가 있었고, 홈페이지를 보니 가끔 전시도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본 서점 중 가장 독특한 구조의 서점이었다.



@레르 드바가



책을 구경하며(여기선 읽을 수 없으니 구경할 수밖에) 위로 올라갔다. 2층엔 카페가 있고, 창마다 소파가 놓여있었다. 소파에 앉아 잠시 쉬며 서점을 한번 더 둘러봤다. 한층 위엔 서점에 어울리지 않는 기계가 있었다. 이전에 있던 섬유공장의 흔적 같아 보였다. 책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한 노인이 "영어할 줄 아니?"라고 물어왔다. 그러더니 대뜸 내 앞에 있던 여자와 함께 따라오라고 말했다. 영문을 모른 채 우리는 노인을 따라갔다. 그는 달을 향해 올라가는 조형물 이름이 'dreamer'라고 알려준 뒤 ㅁ자 모양으로 길을 돌며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든 움직이는 놀잇감같은 것들이었다. 처음엔 그저 친절한 분이라고 생각했고, 설명이 길어지자 지나친 친절에 좀 의아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마지막엔 팁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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