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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Apr 03. 2017

리스본 28번 트램

평소엔 최대한 걷는 거리를 줄이려고 최적의 환승 방법을 궁리하면서, 여행 중엔 하루종일 걷고 또 걷는다. 지도도 보지 않고 때때로 방향만 슬쩍 확인한 뒤 발길이 이끌리는대로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댄다. 지칠 때쯤이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도시에 갔을 때 미술관, 박물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거리를 목적 없이 걸으며 구석에 숨어있는 가게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포르투갈에서도 골목을 열심히 걸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찾아가는 길엔 늘 언덕과 계단이 있었다. 오르막을 오르며 숨을 헐떡일 때면 나만 힘든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서 함께 걷던 이들이 멈춰 서서 다리를 두드리고 거친 숨을 내몰아쉬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됐다. 리스본에 도착한 첫날 성 조르주 성까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누군가와 살짝 부딪쳐 삐끗하면 끝도 없이 굴러갈 거 같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갈 때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트램이 지나갔다. 바로 트램을 타기로 결정했다. 


"어디서 트램을 타면 되느냐"고 묻기가 민망하게 광장 인근 트램 정류장에 유독 사람들이 긴게 줄을 늘어서있었다.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기 좋은 28번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주요 관광지를 지나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트램이다. 40분 정도 기다린 후에야 트램에 오를 수 있었다. 트램에 타면 자리에 앉아 걸어 오를 때 즐기지 못했던 풍경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지옥철과 비슷했다.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넘어지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키고 서있기 위해 또 '나쁜손'으로부터 가방을 사수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트램 안. 안에선 지나가는 골목 풍경을 담기 위해, 밖에선 지나가는 트램을 찍기 위해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대기한다.



트램이 골목을 지날 때면 밖에 있을 때도 안에 있을 때도 은근 긴장하게 된다. 좁은길 하나를 트램, 자동차, 툭툭이, 사람 모두가 같이 사용한다. 그리고 서로를 참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부딪치는 건 아닌지 괜히 신경이 쓰인다. 트램이 속도를 줄일 때면 거북이가 등껍질 속으로 숨어들 듯 창밖으로 기웃대던 고개를 안으로 넣는다. 거리의 사람들은 일제히 트램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은 날 찍을 의도가 아니겠지만 괜히 포토라인에 선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아 쑥쓰러워진다. 

 

트램 안팎을 구경하다보면 금새 목적지에 닿는다. 걸어왔더라면 구경하기도 전에 지쳤을 곳들을 땀 한방울 안 흘리고 볼 수 있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좌)와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본 풍경



@도둑시장



리스본의 언덕길은 다른 교통수단도 만들어냈다. 트램과 비슷해 보이지만 '푸니쿨라'도 있다. 3개의 푸니쿨라가 운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글로리아선을 봤다. 다른 곳에 들렀다 오느라 버스를 타고 왔다 내려갈 땐 글로리아선을 따라 호시우역으로 내려갔다. 타워처럼 솟은 엘리베이터도 있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는 저지대인 바이샤 지구와 고지대인 바이루 알투 지구를 연결한다. 전망대도 있어 주로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지만 엄연히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교통권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푸니쿨라 글로리아선.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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