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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Apr 14. 2017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그라나다 산책

매일 방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알함브라에 가기 위해 하루를 머물다 간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이 도시에 나흘을 머물렀다. 더블린에 있을 때 그라나다가 좋다는 얘길 많이 들어 일부러 일정을 여유있게 잡았다. 처음엔 아랍 국가에 온 듯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루가 지나자 신기함이 사그라들었고, 하루가 더 지나자 주요 관광지와 숙소를 오갈 때 지도가 필요 없어졌다. 


떠나기 전 날. 브런치로 추로스를 먹고 카페에 가서 글이나 쓸 요량으로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지도를 보고 길을 걷다 골목 안 쪽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방향을 틀었다. 과일과 채소가 종류별로 진열돼 있었고 사람들은 커다란 봉지에 담아 양손에 들고 가거나 아예 박스째로 과일을 사고 있었다. 가만히 제일 끝에 가서 줄을 선 뒤 번호표를 뽑고 (신트라에서 갔던 제과점과 같은 모양이라 금방 알아챘다) 사람들을 관찰했다. 물건을 사는 게 한국과 크게 다르겠냐마는 언어도 안 통하고 대량으로 살 것도 아니라 오렌지를 만지작 거리다 결국 내려놓았다. 골목 언덕 아래 길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잠시 목적지를 제쳐두고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다. 또 다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과일 가게를 만났다. 숙소 근처 수퍼에서 봤던 것과는 다르게 확실히 싱싱했다. 계속 들고 다닐 게 귀찮았지만 왠지 다시 돌아오면 문을 닫을 것만 같았다. '카페까지만 들고 가면 되니까'라고 생각하며 오렌지와 토마토를 샀다. (역시나 숙소로 가는 길에 지나가며 보니 과일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았다. 이 길도 여러 번 지나갔었는데 아침에 가본 적은 없어 연 걸 못 봤던 거 같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과일을 사던 가게.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인 곳,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 곳에 온 기념으로 오렌지와 토마토를 골랐다. 달콤한 오렌지를 먹다보니 토마토가 맹맹하게 느껴져 어릴 때처럼 설탕을 솔솔 뿌렸다. 



과일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길을 걸었다. 추로스와 초코라떼를 먹고 나오는데 가게 앞 광장에 또 줄이 보였다. 사람들은 간이 매점 같은 부스 앞에 늘어서있었다. 정수리를 강타하는 햇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례를 기다렸다. 슬쩍 앞으로 가 빵을 파는 것만 확인하곤 맨 뒤에 가서 섰다. 빵 종류도, 금액도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저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꽤 오래 기다렸다. 역시나 사람들이 뭘 사는지 얼마를 내미는지 어깨 너머로 지켜보았다. 일주일은 쌓아놓고 먹을 셈인지 사람들을 빵을 한아름씩 안고 떠났다. 내 차례. 주문은 해야겠는데 도통 뭐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으니 곁눈질과 감에 의존해 빵 3개를 골랐다. 긴장하며 아주머니가 종이에 가격을 적는 걸 지켜보았다. 1.7유로. 기쁜 마음으로 지갑을 열었다. 



@이름 없는 빵 가게. 산책하다 공원에 앉아 빵 하나를 꺼내 먹었다. 


한 손에 과일 봉지와 빵 봉지를 들고 카페를 찾아 나섰다. 노천 카페가 아니라 스타벅스나 코스타처럼 좀 오래 눈치보지 않고 노닥거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무작정 걸으며 찾다보니 또 새로운 길이 나왔다. 도로 가운데 곧게 뻗은 광장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행자가 된 뒤 잊고 있던 요일 감각이 되살아났다. 인파 속에서 아이들 손을 꼭 잡고 걷는 엄마, 팔짱을 끼고 꼭붙어 걷던 연인들, 파티라도 가는듯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 무리를 구경하며 거리 끝까지 걸어갔다. 오른쪽 교회 앞엔 보라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의 드레스를 입고 풀 메이크업에 머리 위 작은 모자까지 얹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의 결혼식이 열리는 것 같았다. 모두의 얼굴에서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분수가 쏟아지는 곳까지 걸어가니 다리가 나오고 왼쪽으론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 그늘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금 추로스를 먹은 걸 잊고 '궁금증'에 빵 봉지를 열었다. 초코맛이라고 했던 납작한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별로 맛이 없네. 싸서 사람들이 많은가?'라고 혼잣말을 했지만 금새 빵을 해치웠다. 





진짜 카페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노트북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목도 메였다. 한참을 걸어 익숙한 거리로 돌아왔다. 관광안내소가 있는 시청 앞 광장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빙 둘러 서있어 음악소리가 들렸다. 음악소리에 또 발일 붙들렸다. 광장에선 사람들이 춤(탱고이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본다)을 추고 있었다. 대부분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태도와 포즈만큼은 진지했다. 구경하는 사람들 몇몇도 옆에서 따라 리듬에 몸을 맡겼다. 한 곡이 끝나 떠나려고 하면 또 다른 곡이 이어졌다. 그렇게 자리가 완전히 파할 때까지 떠나지 못했다. 




커피 체인점은 찾지 못하고 골목 안 좀 한적한 곳에 있는 꽤 넓은 카페를 발견했다.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카페 안에 자리를 잡고 충전기를 꽂고 와이파이에 연결하자 뭔가 안정감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았는데 혼자만 너무 오래 머무는 것 같아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시켰다. 그래도 두 잔에 2.4유로. 


마음은 상쾌하지만 몸은 짓눌리 채 숙소로 향했다. 얼른 짐들을 내려놓고 싶었다. 숙소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엔 역시나 줄이 길었다. 주말이고 날이 좋아 그런지 평소보다 더했다. 가게 앞엔 아이도 어른도 아이크름이 들고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달달한 아이크림이 당겼지만 줄을 기다릴 기운이 없어 일단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문 열 시간 즈음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찾아갔다. 한산한 건 좋았는데 뭘 주문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사먹는 걸 고르면 그게 정답인데. 웨하스처럼 네모난 아이크림이 콘 위에 꽂혀있는 걸 들고 있는 사람들을 여럿 봤지만 메뉴판만 보고 고를 수가 없었다. 결국 가장 무난한 초코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특별하달 순 없었지만 그라나다의 마지막으로 완벽했다. 








@'석류'를 뜻하는 그라나다. 전등마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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