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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Sep 28. 2017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발트 3국

발트 3국에 대해 말을 꺼낼 때면 입안에서 라, 리, 투, 아 같은 글자들이 굴러다녔다. 글자들이 단어로 조합되고 나면 나라와 도시를 연결하느라 단어들이 제대로 입밖으로 나올 때까지 또 제동이 걸리곤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리우데자네이루, 브로츠와프같은 이름은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입에 착착 감겼는데 '에스토니아-탈린, 라트비아-리가, 리투아니아-빌뉴스'는 이상하게 입에 붙질 않았다.


정체도 한번에 말할 수 없었다. 프랑스는 서유럽, 폴란드는 동유럽, 핀란드는 북유럽이 바로 연결되는데 발트 3국은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소련에서 독립한 걸 생각하면 동유럽에 가까워보이는데, 핀란드에서 페리를 타고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얘길 듣고 나면 북유럽인 것 같기도 하다. 탈린에서 만난 가이드는 자신들이 '북유럽'이라고 말했다. 현지인이 그렇다니 받아들여야 하지만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반박할 근거로 없으면서.


거리는 낯설기만 했다. 여행지란 새로움을 찾아 떠나가는 곳이고 낯섦이 즐거움이 되는 곳이라지만 적어도 하나 정도는 익숙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런던아이, 더블린의 그라프튼스트리트 같은 것들 말이다. (더블린의 거리는 영화 <원스> 첫 장면에서 남자주인공이 버스킹하던 곳이다) 처음 파리를 걷는 중일지라도 에펠탑을 마주할 때면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동네 친구를 만난 것만 같다. 그렇게 도시와 안면을 트고 나면 생소한 말과 글자들, 생김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골목을 헤매고 있어도 편안해지곤 했다.  


발트 3국의 올드타운엔 기댈 구석이 없었다. 당장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어될 법한 탈린,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독특한 매력을 뽑내는 리가, 20여개 교회와 성당이 모여 있는 빌뉴스. 각자가 매력을 뽑냈지만 쉽게 도시와 친해질 수 없었다. 정 붙일 구실이 부족했다. 좋아하는 영화에 나왔더라면,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사진 속 도시였더라면, 하다못해 오기 전 가이드북을 보며 '여기다!'싶은 곳을 발견해 그 기대로 왔더라면 좀 더 빨리 가까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는 게 영 없으니 아무 것도 보이질 않고 한동안 도시와 거리를 좁히질 못하고 데면데면했다.




@탈린 구시가지



@리가 구시가지



@빌뉴스 구시가지



'발트 3국'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장기여행 루트에 넣은 3개의 나라였다. 한국에서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니 먼저 다녀와 다른 사람들에게 아는 체하며 "좋은 곳이다" "꼭 가봐라" 자랑할 꿍꿍이속이 여행 목적의 8할을 차지했다. 하지만 결국 이 도시들을 기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흔적들을 만났다. '독립'이라는 단어 필터를 장착하자 쉽게 지나칠 법한 낡은 건물, 야트막한 동산, 거리 조형물 위로 증강현실처럼 이야기가 그려졌다.


1991년 지도 상에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란 국가가 나타났다.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세 국가는 예로부터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18세기부턴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잠독립을 맛보았지만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따라 다시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독립을 향한 열망은 89년 8월 23일 '자유' 외침으로 응축돼 나타났다. 국가에서 200여만명이 모여 탈린, 리가, 빌뉴스를 잇는 620km 인간띠(인간사슬)를 만들었다. 오후 7시. 손을 잡고 15분간 각자의 언어로 '자유'를 목청껏 외쳤다. 이날의 기록은 '발트의 길(Baltic Way)이란 이름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독립' '식민지'란 단어에 유독 예민해진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 나라엔 이유 없이 정이 간다. 아일랜드에 가기로 결정하고 역사책을 찾아보면서 그들이 영국에 맞서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에 가기도 전부터 아일랜드가 가까워졌다. 멀게만 느껴졌던 발트 3국도 한국과 같은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만으로 순식간에 끈으로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일제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지 않았지만 역사를 배우며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만으로도 내겐 약소국의 '설움'이 있었고, 우리말을 쓰지 못하고 국기를 게양하지 못한다는 '한'이 몸에 배어있었다.


워킹투어에서 가이드가 역사를 설명할 때 다른 사람들은 짧은 탄식을 내뱉고 돌아섰지만 나는 분노를 느꼈고 생각에 빠져 잠시 멍해진곤 했다. 식민지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온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땐 자연스럽게 일본어 교육과 창씨개명 강요 속에서 한국어를 지켜낸 이들이 떠올랐다. 현재 러시아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한번은 지하철에서 한 러시아인 노파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에게 '우리가 너희를 이렇게 살게 해줬는데 왜 감사할 줄 모르냐'고 꾸짖 걸 봤다. 라트비아에 함께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꽤 있는데 모두는 아니겠지만 일부는 이런 태도를 보인다"고 답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스탈리 케이크'로 부른다는 리가 과학아카데미를 볼 땐 이제는 사라진 '조선총독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던 건물, 한때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여 엄마와 손잡고 가기도 했던 곳. 이곳 사람들은 스탈린의 모습이 겹쳐질 저 거대한 건물을 지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젠 탈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가,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한번에 뱉어낼 수 있다. 여행을 하며 사람들에게 인상깊었던 여행지를 말할 때 반복해서 얘기한 덕이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를 구분하는 덴 아직도 시간이 좀 걸리지만 몇 번 더 얘기하다보면 지체 없이 '라트비아-리가, 리투아니아-빌뉴스' 조합을 맞춰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찾았을 땐 반가운 마음으로 올드타운 곳곳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소간 39년 체결한 불가침조약. 상호협력한다는 내용 외에 동유럽 분할에 대한 비밀 조항을 두었다. 이에 따라 발트 3국은 소련 영향권에 편입되었다. 발트의 길(Baltic way)은 소련이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비밀조항이 있었단 사실을 인정하고 89년 12월 소련인민대의원 총회에서 비밀조항이 법적으로 무효라 선언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순서대로 리가, 탈린, 빌뉴스의 기념 발자국. 각 도시엔 독립을 노래하며 세 나라 국민들이 함께 손을 잡았단 증거가 진한 발자국으로 남아 있다.   





@리가 과학아카데미.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과 똑 닮았다. 소련 지원으로 스탈린 탄생 80년을 기념해 짓기 시작한 건물이다. 현지인에겐 '스탈린 생일 케이크'로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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