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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Sep 05. 2017

첫 사막, 드디어 찾아온 고요

비로소 고요함이 찾아왔다. 사막에 와서야 거리를 거릴 때마다 ‘니하오’ ‘곤니치와’ ‘치노?’를 쏟아내며 호객행위를 하던 사람들로부터 해방됐다. 온전한 쉼을 위해 큰 맘 먹고 1인실을 예약한 숙소엔 투숙객이 나뿐이었다. 숙소를 나설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숨을 치쉴 필요가 없었고, 숙소에 들어와 남을 신경 쓰며 자리를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됐다.      


유일하게 날 괴롭히는(?) 이들은 마주칠 때마다 “샤이(민트티) 한 잔 줄까?”라고 말을 거는 주인 아저씨와 직원들이었다. 손님이 오면 환영의 의미로 차를 대접하는 것이 이곳의 문화라면서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연신 불편한 게 없는지 묻고 민트티를 가져다주었다. 때때로 “점심 때 만들어 먹고 좀 남았는데 쿠스쿠스 먹어볼래?” “하리라(렌틸콩 혹은 병아리콩으로 만든 전통 스프) 먹어봤니? 맛 좀 볼래?”라고 권하기도 했다. ‘고객’이 아니라 ‘손님’이 된 기분이 들었다.       




     


사막 마을인 메르주가에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이곳엔 모래사막 밖에 없었으니까. 누가 시켜하는 여행이 아니건만 늘 바빴다. 도시마다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고 하고 싶은 일은 늘 많았다. 떠나기 전 알아볼 땐 몇 개 되지 않았던 ‘하고 싶은 일 리스트’는 도착한 뒤 매번 늘어났다. 돌아다니느라 밥을 거르게 되는 때도 왕왕 있었다.      


여기서 할 일이라곤 볕을 받으며 책을 읽다 모래바람이 불면 방에 들어가고, 한기가 느껴지면 나와 고양이와 노는 것뿐이었다. 먹을 게 있는 줄 알고 다가왔다 빈손을 확인하고 고양이들이 매정하게 돌아서면 혼자 남겨서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숙소를 나섰다. 때로는 음식점과 슈퍼 등이 있는 (번화가라기엔 뭐하지만) 번화가로, 때로는 숙소 뒤 모래 언덕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막 마을 가장 안 쪽에 자리한 숙소라 몇 걸음만 나가도 주위엔 온통 붉은 모래뿐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을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모래 위에 누웠다. 달궈진 모래 언덕은 온돌 바닥 같았다. 그곳에선 바람이 불어 모래가 옷에 부딪치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이틀 동안 사막 근처에서 놀다 드디어 ‘진짜 사막’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룻밤 머물다 돌아올 거라 평소처럼 가방에 카메라 하나를 덜렁 넣고 (스스로의 준비성에 뿌듯해하며) 다른 사람들 후기에서 본대로 한국에서 쓰던 스카프도 하나 챙겼다. 나를 본 주인 아저씨는 “그 스카프는 너무 짧은데. 내 냄새가 날 순 있는데 괜찮다면 이걸 하고 가”라며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줬다. 그는 내 머리에 스카프를 감기 시작하더니 금방 모래바람 불 때 코와 입을 가릴 수 있는 기능까지 겸비한 ‘베드인 식’을 완성했다. 초보 사막 여행자가 걱정이 됐는지 물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내가 든 병을 보더니 바로 1.5리터 생수병을 하나 들고 왔다. “사막에서 씻고 이를 닦고 마시려면 이 정도는 필요할 거야”라고 말하며 가방에 넣어주었다.      


     

@가이드 유셰프



‘혼자 있고 싶다’는 내 바람이 그만큼 간절했던 걸까.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었다. 보통 사막 투어를 신청하면 가이드가 낙타 여러 마리를 끌고 캠프로 향하기 마련인데, 그날 신청자는 나 혼자였다. 친절했지만 수줍음이 많은 듯 과묵했던 가이드 덕에 2시간 남짓 낙타를 타고 가는 내내 풍경에만 집중했다. 캠핑장에 도착하자 가이드 유셰프는 “오늘 여기 있는 사람은 너뿐이니 편히 지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화장실이 필요하면 아무 데나 가면돼. 여긴 사막이니까”라고 말하며 캠프 내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전기가 없는 이곳에는 어둠이 일찍 내려앉았다. 오후 7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방이 캄캄했다. 의지할 것이라곤 유셰프가 천막 숙소 앞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아준 촛불이 전부였다. 흔들리는 촛불에 의지해 일기를 쓰고 저녁을 먹었다. 모래 위 의자가 푹푹 빠져 균형을 잡기 어렵고 책상이 낮아 힘들어도 계속 웃음이 났다. 일행도 인터넷도 없는 사막의 밤. 대비책으로 책을 들고 왔지만 ‘기가(G)급’으로 녹아드는 초 때문에 맘껏 읽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캠프 안을 서성이며 하늘을 바라보다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밖으로 나갔다. 고작 몇 걸음 나가는 건데도 어둠 속으로 향하는 것이 번지점프대에 끝에 서서 허공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모래 언덕을 오르자 차갑게 식은 모래가 신발 안으로 계속 밀려들어왔다. 이곳에선 고개를 힘껏 젖히지 않아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별이 쏟아진다’는 말이 단번에 이해됐다. 그렇게 한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또 봤다. 축제가 열리는 듯 멀리서 타악기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막의 추위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음악(?)을 들으며 손으론 모래 장난을 하고 있을 때 별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별동별. 신기함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추위를 견딜 수 없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난방 장치는 없었지만 두꺼운 담요 2개와 걷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묵직했던 천막 덕에 추위에 떨지 않고 밤을 지낼 수 있었다. 그래도 불편했는지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떴다. 아침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하늘을 보는 것뿐이었다. 다시 언덕에 올랐다. 어스레한 하늘은 보랏빛으로, 핑크빛으로 색을 바꾸었다. 구름 탓에 또렷한 태양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하늘빛을 보며 해가 떠오르고 있음을 가늠해볼 뿐이었다. 기다릴까 돌아갈까 마음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언덕을 내려가면서도 아쉬운 맘에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사막은 마지막까지 고요했다. 모래 위를 사박사박 걷는 낙타의 발소리, 물병에 남은 물이 낙타의 리듬에 따라 찰랑거리는 소리만이 주위를 맴돌았다. 태양은 말없이 등 뒤에서 ‘뜨거운’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이 아쉬운 나만 부산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찰칵찰칵’ 정적을 깼다.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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