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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Nov 10. 2017

4월 9일의 '우주피스공화국'

어딘가에 간다는 건 명확한 일이다. 따라서 "너 거기 가봤어?"란 질문엔 '예스' 또는 '노'란 답만 존재한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답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거기 좋았어?"란 질문과는 결이 다르다. 무엇이 좋아야 좋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 감정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1~10점 가운데 마음이 어디쯤 놓여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인지, 마음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5점 이상이면 좋은 것인지 9점은 돼야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뻗어나가는 물음과는 분명 다르다.


"우주피스 공화국 가봤어?"


가보았다. 음, 아니다. 그렇다고 가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가긴 했지만 갔다고 할 수 없고, 가지 않았다고 하기엔 발을 들였으니 갔다고도 할 수 있는, 4월 9일의 우주피스 공화국은 그런 나라였다.



@우주피스 공화국에 들어가는 다리. 일년에 한 번, 이곳엔 immigration이 설치된다.



다리를 건너면 새로운 세상이 짠 나타날 것 같았다. 해리포터의 '9와 3/4 승강장'과 같은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뭔가 있을 줄 알았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올드타운에서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우주피스 공화국' 입성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일년에 단 하루 4월 1일에만 거짓말처럼 생겼다 사라지는 이곳. 일주일이나 지나 찾아와선 도시의 떠들썩함을 기대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사진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 자꾸만 떠올라 아쉬움을 곱씹었다. 며칠 전엔 출입국 심사대(immigration)가 설치돼 여권 없이는 지나지 못했을, 입국 도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을 다리 위를 아무런 제지 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우주피스 공화국'이란 표지만은 현 위치를 증명해줬다.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을 통과해 들어가니 조금은 익살스러운 공간이 펼쳐졌다. 물 위엔 어린 아이들이 접어 띄워놓은 듯한 배들이 떠다니고, 물가엔 바람개비가 돌아갔다. 강 건나 교회가 바라다 보이는 곳엔 십자가 대신 여행자의 배낭을 지고 있는 예수상이 세워져 있었다.  장난 같기만 한 이곳을 '국가'로 보이게 하는 건 골목 한 쪽 벽면에 붙어 있는 헌법 조항이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게토였고 홀로코스트와 소련의 강제 점령 등으로 거치며 발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이곳으로 주변부를 서성이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세월의 더께로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건물은 노숙인들과 매매춘을 하는 이들이 아지트가 되었다. 가난한 예술가들도 이곳을 택했다. 마을 사람들은 장난처럼 1997년 4월 1일 '우주피스(Uzupis)'란 이름의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헌법은 물론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기도 있다.


우주피스란 이름은 '강 건너편'이란 뜻이다. 빌니아 강 건너편에 위치한 지역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낸 이름인데 이곳을 찾기 전 나는 이름을 꽤나 근사한 상상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우주피스란 이름이 한국식 조어라고 생각했다. '우주평화(space+peace)'를 뜻하는 이름이 아닐까. 돌이켜보니 정말 제멋대로인 상상인데, 근사한 나라 이름에 맘에 드는 헌법까지 보고 있자니 이곳이 '유토피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돌아다녀보니 어느 나라에 살면 좋겠다 싶어?"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선 시선의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이기보단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 기자란 직업에 맞는 역할, 주위 친구들 삶의 속도란 기준에 맞춰야 했다. 사람들을 만날 땐 주고받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종이 한장으로 내가 규정됐고, 대화할 땐 몇 살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에 따라 잘 살아 왔는지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 평가되는 것 같았다. 날 응원하고 지지해주지만 그렇기에 실망시킬 수 없는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기준선도 늘 충족해야 했다.


여행을 하며 좋았던 건 내가 나일 수 있어서였다.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학교도 묻지 않았고, 직업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이를 들어도 '그 나이에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느냐'는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게 길에서의 이야기만 나누었다. 어디에 가니 이런 게 좋고, 어느 나라에 가면 이건 꼭 해봐야 하고 먹어야 한다와 같은 것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닌 현재의 나일 수 있었다.


4월 1일이 아닌 이곳의 거리는 여느 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먹빛 하늘과 차가운 공기살갗에 찰싹 달라붙는 날씨는 유토피아보다는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떠오르게 했다. 그래도 게을러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곳이라면, 특별해도 되고 특별하지 않아도 되고, 사랑해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고, 행복해도 되고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픈대로 살면 된다고 헌법에 규정한 곳이라면 그저 네가 하고 싶은대로 너인채로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곳이라면 한번쯤은 살아봐도 좋지 않을까. 살아간다는 건 여행과는 다르겠지만.





@메인 광장의 천사상(좌)과 이곳의 과거를 담고 있는 건물



<우주피스 공화국 헌법 조항 일부>


모두 실패할 권리가 있다.

모두 특별(unique)해질 권리가 있다

모두 구별되거나 알려지지 않을(unknown) 권리가 있다.

모두 사랑할 권리가 있다.

모두 사랑받지 않은 권리를 갖는다. 다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모두 게으를 권리가 있다.

개는 개로서의 권리를 갖는다.

고양이는 그 주인을 사랑할 의무가 없지만 필요할 때 도와야 한다.

모두 행복할 권리를 갖는다.

모두 행복하지 않은 권리를 갖는다.

모두 권리를 갖지 않은 권리를 갖는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이 각국 언어로 써있다. 아직 한국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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