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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Nov 24. 2017

발트 3국, 올드타운 헤매기

발트 3국 여행은 리가에서 시작됐다. 모로코에서의 반팔차림은 런던에서 트렌치코트로, 리가에선 패딩으로 바뀌었다. 머리를 쓴다고 써서 고른 4월 여행이었지만, 4월 초순의 발트3국은 여전히 겨울을 벗지 못한 모습이었다. 진짜 겨울엔 사람들이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리가  


오래 전 올드타운엔 강이 흘렀다. '리가'란 도시 이름이 유래한 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표지판 과 가이드 설명으로만 물길이 흘렀음을 가늠해 볼 뿐이다.  도시도 발 아래, 이야기로 존재한다. 오래전 유럽은 엄혹한 7~8개월의 빙하기를 겪었다고 한다. 강바닥까지 얼어붙는 추위가 견디기 힘들었을테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에  삶을 살아냈다. 시간이 지나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또 다른 재앙이었다. 물난리로 집이 잠겼다. 근처 언덕의 흙을 파다 터전을 돋우며 또 다시 살아 남았다. 올드타운에 서서 주위를 둘러오면 언덕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지하에 있는 상점을 볼 수 있다. 2m 아래 형성됐던 원래 도시의 흔적이다.





@성베드로 성당 뒷편에 있는 브레멘 음악대 동상. 리가의 자매도시인 독일 브레멘시가 해방을 축하하며 보낸 선물이라고 한다. 동물들 코와 입 부분이 반질거린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동물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에 이 앞을 지나치는 관광객들은 한번씩 점프를 하곤 한다.  



시장 구경은 그 도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떤 도시의 시장엔 현지인은 없고 관광객들만 가득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물건과 서비스만이 가게를 채운다. 편리하지만 매력은 찾아볼 수 없다. 리가의 센트럴 마켓엔 현지가득했다. 넓은 시장 안에서 길은 헤매고 쭈뼛댈 때, 다른 이들은 능숙하게 필요한 것들을 척척 골랐다.


시장은 5개의 파빌리온로 이뤄져있다. 생선, 고기, 채소 등 품목에 따라 건물을 따로 쓴다. 그 중 고기를 파는 파빌리온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어질 당시 이곳은 유럽 사람들이 한번쯤 구경 와보고 싶은 첨단 공간이었다. 냉난방시설에 엘리베이터까지 갖추고 있었다. 전쟁 땐 격납고로 쓰여 천장이 열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현재도 마켓 전용 경찰서와 소방서가 있다. 노숙자 쉼터도 운영하고 있어 시장에서 팔고 남은 음식은 쉼터로 보내진다고.


겨울이 긴 이곳에선 훈제(smoked)요리가 발달했다. 시장에선 고기와 생선은 물론 닭 훈제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절임 채소(marinated)도 유명하다. 버섯, 오이, 토마토는 물론 사과까지도 병에 담아 식초에 절인다. 가이드는 닭 훈제를 강력 추천했다. 투어가 끝난 뒤 혼자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다 문 닫기 전 아슬아슬하게 마켓을 다시 찾았다. 닭다리 한 조각과 양배추 절임을 샀다. 무게를 달아 파는데 부른 가격에 맞춰 동전을 세고 있자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센 것까지만 주고 가란다. 10센트 정도 할인 받았을 텐데 배시시 웃음이 났다.



@센트럴 마켓




탈린


리가에서 탈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계획대로라면 런던에서 탈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야 했지만 비싼 탓엔 리가에서 탈린 그리고 빌뉴스로 내려가는 비효율적인 동선을 택했다. 비행기 값보다는 야간버스비가 훨씬 싸니까. 탈린으로 가는 버스 창 밖으로 침엽수림이 펼쳐졌다. 오후 늦게 출발한 버스가 한참을 달렸는데도 해는 완전히 사라지지않았다. 백야를 경험해봤지만 날이 이렇게 추운데, 차 안 온도계 숫자가 점점 떨어지는데 어둠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게 어색했다.


탈린은 중세 세트장 같았다. 당장 영화를 찍어도 될 법한 도시 구석구석을 헤맸다.  



풍경에 이질감 없이 녹아든 몇 몇 모습들은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우리나라 주막 느낌이 물씬 나는 3Dragon에 들어가면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사슴수프를 팔고 있다. 직원들의 무뚝뚝함이란 덤이 따라왔지만 수프와 탈린 전통 술 비니(Vini)로 언 몸을 녹이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이곳의 피클은 무한정 먹을 수 있는데 이용 방법이 주인을 꼭 닮았다. 한쪽 구석에 오크통으로 보이는 커다란 통이 있는데 그 안엔 피클이 가득 담겨있다. 뚜껑에 꽂혀 있는 장대를 이용해 끝에 달린 뾰족한 쇠 부분으로 피클을 찍은 뒤 원하는 만큼 집어 먹으면 된다. 다만 피클을 담을 그릇과 포크는 주지 않는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손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약국에서 파는 '사랑의 묘약'(누군가는 헤어짐을 치유해주는 약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이뤄주는 약이라 했다)과 거리 곳곳에서 파는 달콤한 허니 아몬드드를 파는 이들도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을 했다.





올드타운에서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톰페어 언덕에 올랐다. 언덕이라지만 해발 40m에 불과해 도착해놓고도 주위를 계속 헤매야 했다. 언덕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았다. 워킹투어 가이드는 '힙 플레이스'로 꼽히는 텔리스키비를 추천했다. 기차역 너머에 있는 곳으로 공장지대를 아티스트 아지트로 꾸민 공간이었다. 성문을 빠져나와 아티스트들의 사무실과 작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건물, 기념품이나 골동품이 아니라 진짜 필요 없어진 물건을 교환하는 벼룩시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찾아 간 식당. 맛집 정보 없이 촉이 오는대로 좀 허름해보이는 회색 벽돌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상 외의 활기찬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직원 안내로 앉은 자리엔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왔다. 한참 뒤 나온 파스타는 여행 중 먹은 수많은 파스타 가운데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맛있었다.



@Seafood pasta with prawns, mussels and creamy white wine sauce




빌뉴스

야간버스를 타고 일요일 이른 아침 도착한 빌뉴스. 염치 불구하고 캐리어를 달그락 거리며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호스텔에 도착했다. 오면서 슬쩍 바라 본 건너편엔 시장이라도 열린 듯 사람들이 바닥에 뭘 한 가득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일찍 체크인을 해준 덕에 씻고 잠을 정해볼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정신이 말똥말똥해 곧바로 문제로 장소로 향했다.


올드타운 입구 격인 새벽의 문 앞에선 말린 꽃 혹은 갈대처럼 보이는 것들을 잔뜩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손에 그것들을 들고 새벽문을 통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며 경건함을 표하곤(성호 긋기 혹은 기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발길을 재촉했다. 수십 개 교회가 모여있는 이곳의 여러 교회 앞에서도 같은 걸 팔고 있었다.  


부활절 한 주 전인 종려주일 풍경. 원래는 종려나무(palm tree)를 써야 하는데 리투아니아에선 나질 않아 마른 꽃을 이용한 장식을 대신 사용한다고 후에 가이드에게 들었다. 교회에 가져가 예배를 드리며 축복을 받고 이걸 집에 두면 가장을 지켜주고 복을 준다고 하여 사람들이 들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마주친 모든 이들이 올 한해도 행복했기를.



@종려주일 흔한 풍경.jpg



그리고


@ damn good!!이란 뜻이란다. 리가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필름 카메라로 찍었더니 기억이 가물가물


@탈린 골목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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