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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Jan 08. 2018

체코에 다시 가게 될까

프라하에 다녀왔다는 얘기만으로 반색하는 얼굴을 마주하고 차마 '별로'란 단어를 꺼낼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려고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니 입이 잘 안 떨어졌다.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뭐가 좋았는지 (의도치 않게) 질문 공세를 펼 사람을 앞에 두고 술술 이야기를 만들어낼 깜냥이 없었다. 결론은 정해져있는데 매력적이었다고 포장하려다보니 자꾸만 설명이 길어졌다.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짙어졌다. 대화를 마무리하며 그는 말했다. "프라하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다니 안타까워.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네가 나중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땐 좋아하게 될 거야. 꼭 다시 가보길 바랄게."


프라하를 제2의 고향이라 말하는  친구의 프라하는 눈길을 두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그 위를 걸을 땐 여유로움이 따라오는 곳이었다. 모든 음식이 맛있고 맥주 맛도 일품인 도시. 그의 기억엔 무뚝뚝해 보이지만 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겨울 패딩을 입어야 했던 찬바람, 바퀴가 망가진 캐리어를 끌고 지나갔던 돌길, 새 캐리어를 사기 위해 쇼핑몰과 거리의 가게들을 돌아다녔던 시간 그리고 그때 마주했던 몇몇 퉁명스러운 얼굴들, 베드버그에 물려 붉게 부풀어 오른 얼굴과 목, 팔다리를 긁지도 못하고 몸부림쳤던 시간, 코인 세탁소에서 가진 옷 전부를 통에 넣은 후 이어진 기다림,  부활절 연휴를 맞아 찾아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광장과 카를교, 프라하로 총각 파티를 온 무리가 호스텔을 장악하고 떠들어대는 통에 잠을 설친 밤. 나의 프라하는 그랬다.


다행히 프라하의 시간이 꽁꽁 언채로 남아 있진 않다. 베드버그에 시달리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전화와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과 이른 아침 걸었던 카를교 덕분. 그때를 기억에서 꺼낼 때면 새벽녁 화로의 닿을락 말락한 열기가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곤 한다.


  

@부활절 장식과 부활절 채찍. 문을 지키고 선 아저씨는 부활절 전통이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엉덩이를 때렸다.


@사람 맞이를 준비하는 이른 아침 카를교



@걷는 재미를 주는 프라하 풍경




체스키, 봄인 듯 봄이 아닌 듯


프라하행 막차가 떠나자 상점 문이 하나 둘 닫혔다. 거리에 간간이 보이던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어둑한 빛이 완전한 어둠으로 바뀌기 전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폰은 추위에 자꾸만 방전됐다. 방향만 잡고 걸으며 주머니에 넣은 아이폰을 꼭 쥐었다. 온몸의 온기를 아이폰에 전달하겠다는 것처럼. 아이폰은 한 달쯤 꽁꽁 얼린 얼음팩 같았다. 손의 열기만으론 택도 없을 땐 아이폰을 양 손바닥 사이에 넣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위중한 환자라도 살리려는 듯이. 각고의 노력 끝에 아이폰이 켜지면 노심초사하며 위치확인했다. 그리곤 손이 저리도록 폰을 다시 꼭 쥐었다.  


이 추위는 뭘까. 분명 이 동네를 걸으며 꽃을 보았다. 동화 속 마을 같이 빨간 지붕이 펼쳐지는 풍경 안으로 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걸 똑똑히 목격했다. 이들에게 온기를 준걸 누굴까. 걸으며 머릿속으로 '오늘이 4월 며칠이더라' 생각했다. 산장처럼 생긴 아담한 2층 집 숙소 앞에도 꽃나무가 서있었다. 막 꽃망울을 틔운 것도 아니고 넌 언제 이렇게 활짝 핀 거니. 궁금했지만 금방이라도 말간 콧물이 쏟아질 것 같은 코를 한번 쓱 훔치며 곧장 숙소로 들어갔다.


추위에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마지막 남은 라면을 끓였다. 한 무리 사람들이 요리를 해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간 주방을 혼자 차지했다. 라면물을 올리고 불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잠시 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눈"을 외치며 모자와 장갑 카메라를 챙기러 뛰어가는 사람들이 만든 작은 소란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왔는지 눈이 제법 쌓여 이미 지붕을 하얗게 덮었다. 뜨거운 국물을 넘기며 김이 서린 창문을 손바닥으로 슥슥 닦았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닿는 차가움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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